[꿀빵]'박근혜 첫 재판' 방청 당첨돼 법원 직관 다녀온 후기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이슈팀 서민선 기자 2017.05.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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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공동취재단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5월 23일.

참 얄궂은 날이었다. 이날 하루 포털 사이트 실검 순위 경쟁은 그 어느 날보다 치열했다. △'톱스타 부부'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임신 소식 △축구선수 손흥민의 귀국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사임 소식까지…

정치 뉴스도 빠지지 않았다. 이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의 '끝판왕'은 박근혜 전 대통령. 바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이 있었던 날이다.



23일 오전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재판을 직접 지켜보기 위해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재판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 시민'으로서 이날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선 '추첨 전쟁'을 뚫어야 했다. 지난 19일 무려 7.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방청권을 쟁취해 냈던 것이다.(그 기세를 이어가고자 지난 주말 로또를 샀지만 결과는 또르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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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30분 도착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2층 5번 법정 출입구 앞. 취재진과 방청을 위해 모인 시민들로 북적였다.

그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레이저 시선'.


"공부하고 일 할 시간인데, 공부도 안 하고 일도 안 하고 여기 왔네. 에휴.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까…"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할머니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 못 들은 척 자리를 피했다.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정면으로는 수많은 카메라가 보였다. 비록 보통의 '시민'으로 재판을 방청하는 것이긴 하지만 본업이 기자인지라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친구와 회사 동료들로부터 온 카톡에는 줄을 서고 있는 내 모습이 찍힌 뉴스 링크가 찍혀 있었다.

'숨은 기자 찾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쉬를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보도사진에 나오고야 말았다./사진=뉴시스'숨은 기자 찾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쉬를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보도사진에 나오고야 말았다./사진=뉴시스
얼마 간의 기다림 끝에 받아든 방청석 번호는 60번과 77번. 방청을 위해서는 법정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법정까지는 2개의 관문을 넘어야 했다.

우선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1차 신원 검사와 몸 수색을 받았다. 몸 수색의 강도는 셌다. 주머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뺀 뒤 검색대를 지났다. 그러자 이번엔 남성 경위가 직접 몸 수색 기계로 내 몸을 훑었다. 지금껏 겪어왔던 것 중 최대로 내 몸에 밀착해 기계를 훑고 내려갔다. '그렇게 기계를 내 몸에 세게 대지 않아도 기계는 작동할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다.

앞서 몸 수색을 받았던 '60번 시민'(내 방청권 번호는 77번)은 라이터를 뺏겼다고 했다. 비록 라이터를 잃었지만 60번·77번 시민은 1차 관문을 통과했다. 가운데에 쇠창살이 쳐진 원형 계단을 통해 4층에 올라갔다. 그리고 우회전을 두 번 하자 보이는 '417호 대법정'. 그 앞에서 2차 신원 검사가 진행됐다. 신분증과 당첨증을 확인한 뒤에야 대법정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법정이라곤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법정이 작아 보였다. 무엇보다 77번이 써진 자리가 안 좋았다. 판사석에서 바라봤을 때 피고인이 있는 왼쪽 편에 위치해 있었다. 77번 자리 앞 4줄에 방청객들이 앉고, 그 앞으로 변호사들이 앉기 때문에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잘해야 박 전 대통령 옆모습만 보이겠구나' 싶었다.(누가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는가)

법정 안에서는 끊임없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재판관들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라 △소란을 피우지 말라 △재판을 촬영·녹음·녹화를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등의 내용이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최순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재판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뇌물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해 최순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재판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대망의 오전 10시. 재판관들이 입장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나와서 자리에 앉으십시오."

재판관의 한 마디에 피고인 출입문이 열리고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법정 안에 들어온 박 전 대통령은 잠시 머뭇거린 뒤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피고인석에 앉았다.

박 전 대통령은 감색 재킷과 청색 계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재킷 왼쪽 가슴 부분에는 '503'이라는 수용자 번호가 적힌 둥근 배지가 달려 있었다. 얼굴은 화장기 없이 약간 초췌해 보였다. 눈은 부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올림머리'도 눈에 띄었다. 다만 이번에는 전문 미용사가 아닌 본인이 직접 서울구치소에서 구매한 1660원짜리 집게핀 1개와 390원짜리 머리핀 3개를 이용한(=2830원) '셀프 올림머리'였다.



잠시 후 같은 출입문을 통해 최순실씨가 들어왔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인지 박 전 대통령이 앉아 있는 쪽이 아니라 방청객쪽 통로를 통해 자신의 자리로 갔다. 박 전 대통령도 최씨를 쳐다보지 않고, 정면만 바라봤다.

그렇게 '40년 지기'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한 법정에 섰다.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 출석했다./사진=공동취재단23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 출석했다./사진=공동취재단
재판관 : 이름이 박근혜가 맞습니까?
박 전 대통령 : 네.
재판관 : 직업이 무엇입니까?
박 전 대통령 : 무직입니다.
재판관 : 생년월일이 52년 2월 2일 맞습니까?
박 전 대통령 : 네.
재판관 : 주소지가 어떻게 됩니까?
박 전 대통령 : 서울 강남구 삼성동 XXX...

'피고인 박근혜'의 신원 확인 후 재판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재판관의 물음에 일어서서 답하는 박 전 대통령의 목소리 톤은 변함 없었다. 변한 것은 직업이 '전직 대통령'에서 '무직'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최순실씨에 대한 신원 확인 과정에서 최씨는 자신의 주소를 이야기하며 울먹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정면만 쳐다볼 뿐 최씨가 있던 왼쪽으로는 고개를 단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공동취재단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공동취재단
이어서 검사 측의 공소사실 설명이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설명하는 것인데 무려 50분이나 걸렸다. 고요한 분위기에 어려운 법률용어가 뒤섞여 살짝 졸음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껏 졸 수도 없었다. 법정 안에 배치된 12명의 경위들의 감시가 심했다.

"졸지 마세요." "다리 꼬지 마세요."

오랜만에 다시 학교로, 아니 군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나무 의자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불편해 옆 사람과 강제 '어깨 부비부비'를 해야 했다.

길게만 느껴졌던 검사 측의 공소사실 설명이 끝나자 피고인 측 모두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역시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네. 변호인의 입장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최순실씨는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묻는 시간을 빌려 박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40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께서 법정에 나오시게 돼 (제가) 죄가 너무 많은 죄인인 것 같습니다."

최씨는 울먹이며 박 전 대통령에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최씨 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오전 11시 26분. 최씨 측의 요청으로 재판이 10분 간 휴정됐다. 최씨가 먼저 법정을 나갔고, 잠시 뒤 박 전 대통령이 나갔다. 반대로 법정에 들어올 때는 박 전 대통령이 먼저 들어왔다. 박 전 대통령은 씩씩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자리로 갔다.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어진 재판에서는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돈 봉투 만찬 사건'을 언급하며 검찰을 공격했다. 유 변호사는 이날 발언 도중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께서'라고 말했다가 '피고인 박근혜'로 다시 말하기도 했다.

검사 측은 모든 검찰 수사는 법과 원칙, 증거에 따라 진행됐다고 맞섰다.

이어 최순실씨 측 이경재 변호사가 지난 6개월 동안 자신들이 요구한 증인들 중 1명만 채택되고, 태블릿 PC를 아직까지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김세윤 부장판사(재판장)가 직접 나서 최씨 측이 요청한 증인들이 채택되지 않은 것은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태블릿 PC는 증거로 채택이 안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경재 변호사가)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재판이 끝나갈 무렵 정면만 바라보던 박 전 대통령이 단 한 순간, 몸을 움직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재판과 최순실씨의 재판을 합쳐서 한 번에 진행(=병합 심리)키로 했다는 재판부의 설명에 몸을 앞으로 빼 내용을 자세히 살피는 모습이었다.

재판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 오후 1시 1분 끝났다. 재판 첫 날인 만큼 양 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있을 재판 일정을 잡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의 다음 재판은 오는 25일 오전으로 잡혔다.

재판이 마무리되자 박 전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망설임 없이 법정을 나섰고, 교도관들이 뒤따랐다. 최순실씨는 변호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교도관들과 함께 법정을 나갔다.

한편 이날의 역사적 재판을 방청한 유명 인사가 있었으니… 주인공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불구속 상태이긴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최순실씨와 함께 피고인 신분인 신 회장도 이날 재판에 출석했다. 역대급 동료 피고인들 덕분에 비록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국말이 서툰 신 회장은 검사 측의 공소사실 설명 이후 '공소장을 봤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으로 "보지 못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재판관도 당황하고 방청객도 당황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당황한 듯 보였다. 이후 신 회장은 "변호인과 똑같은 의견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상황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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