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민주당 정부'

머니투데이 정영일 기자 2017.05.23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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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민주당 정부'


최근 청와대가 새로 출범한 정부 명칭을 따로 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정부’ 정도로 부르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지난 연말쯤 평소 친분있던 민주당 관계자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뒤여서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갔다.

그 관계자는 탄핵의 공신으로 강기정 전 의원이 포함돼야 한다는 다소 뜬금없는 주장을 했다. 강 전 의원이 주도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당시 집권세력 내부의 균열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고 그 결과 탄핵소추안 의결에서 예상보다 많은 여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여야 원내대표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개혁안에 합의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합의의 한 주체인 여당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했다. 그 여당 원내대표는 그 다음해 교섭단체 연설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증세없는 복지'를 비판했다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인'으로 찍혔다. 그 결과 그는 20대 총선에서는 공천도 받지 못했다. 결국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이후에는 바른정당 창당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앞뒤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따져보지 못했지만 그 관계자가 전해준 일화가 당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머리에 남아있다.

그래서 새 정부가 '민주당 정부'라는 청와대 입장에 관심이 간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목줄을 쥐고 있는데 여당이 정권에서 파생된 정당에 불과한데 그 정부의 이름에 여당 당명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반대로 여당의 이름을 딴 정부라면 대통령이 과거와 같이 여당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 아닌가.



내친 김에 몇가지 더 기대해본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요구하는 법안 통과에 급급한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여야가 국가적 의제에 대한 협상을 하는데 문구 하나하나 청와대의 '윤허'를 받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모습이 재현되지 않기를, 대통령과 국민의 대의기관인 여당과 국회가 보다 대등한 관계 속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나라가 되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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