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미 FTA 재협상, 호들갑 끝낼 때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2017.05.04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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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로든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수 밖에 없다고 봤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말할 이유는 전혀 없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끔찍한(horrible) 협정이다. 재협상(renegotiate)하거나 폐기(terminate)할 생각”이라 평가한 데 대한 속마음이다.

후보 때부터 한·미 FTA를 ‘일자리 킬러’에 빗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순간 한·미 FTA 재논의는 기정사실이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부가 이를 모른 것은 아니다. 다만 국익과 앞으로 이어질 재논의 과정을 고려하면서 함구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발언은 그의 전형적인 협상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1987년 펴낸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 따르면 협상이란 먼저 ‘강한 어조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고 ‘판을 흔들며 위협’한 뒤 ‘새로운 조건을 앞세워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언론플레이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그의 매뉴얼이다. 그는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 정부에 통보하지 않고 언론에 먼저 재협상 또는 폐기를 공언한 의도가 뻔한 셈이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불공정 무역 국가”라고 비판했다. 기선을 제압한 결과 일본 기업의 미국 내 4500억달러(약 509조) 투자와 70만개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환율조작국’ 지정을 언급하고 ‘하나의 중국’ 문제까지 건드려 ‘중국의 대북 압박’ 카드를 끌어 냈다.

한·미 FTA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본인의 협상 상대방(19대 대통령)을 결정하는 대선을 앞두고 빈틈을 노려 흔들기를 하고 있는 것. 한·미 FTA 재논의는 그게 ‘재협상’인지, ‘개선’(reform)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패닉’ ‘쇼크’ 등의 표현으로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트럼프 정부의 노림수를 간파해 국익 극대화 방안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올인해야 한다.
[기자수첩]한·미 FTA 재협상, 호들갑 끝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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