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차이나로드 빨간불…'K뷰티'의 한템포 쉼표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7.05.02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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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벌써 4시간째다. 목이 마르고 화장실도 급하지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제품을 사겠다고 아우성치는 손님들의 대기줄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1인당 구매가능한 갯수가 제한돼 있다는 안내문을 붙여놨지만 막무가내다. 어느새 온 몸이 땀 범벅이다. 매장 냉방 시스템이 하루종일 가동되지만 소용이 없다. 사계절 내내 여름 유니폼을 챙겨 입는 동료도 있다. 근무시간 중간에 짬짬이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발길을 끊기 전 '설화수', '후' 등 서울 시내면세점의 인기 'K뷰티' 브랜드 매장 직원들의 하루다. 같은 면세점·백화점 매장 직원들 사이에서도 '극한 직업'으로 통했던 이들의 근무여건이 최근 완전히 달라졌다. 직원 5~6명이 전열을 갖추고 서 있지만 정작 손님이 없어 매장이 썰렁하다. 1년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반토막 났다. 단체관광객이 몰려 제품을 박스째 쌓아놓고 팔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실제 'K뷰티'는 수년간 중국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한국에 들어와 '메이드 인 코리아' 화장품을 싹쓸이해가는 유커 덕분에 매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대표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했다. 특히 연 평균 20~30% 이상 성장세를 지속하던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세계 화장품 시장 7위 기업에 올랐다. 시세이도, 카오 등 일본 기업은 수십년 전부터 글로벌 화장품 기업 반열에 올랐지만 한국 기업이 10위권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중국 사드 보복 직격탄을 맞은 'K뷰티' 현장에선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유커를 맞으려고 비싼 비용(임차료·수수료)을 지불하고 매장과 직원을 늘렸는데 매출이 줄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 내국인 고객을 비롯해 일본, 동남아, 중동 등 다양한 국가 고객들이 다소 늘었지만 매출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중국 현지에선 수출제품이 통관에 막히는가하면, 위생허가가 나지 않아 애를 태우는 사례도 많다.



당장 잇츠스킨, 네이처리퍼블릭 등 브랜드숍 업체가 지난해 매출액이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더페이스샵, 미샤, 토니모리 등은 역신장은 면했지만 매출 성장세는 예년만 못했다. 아모레퍼시픽도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0% 가까이 감소했다.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시장 다각화 전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상치 못한 사드 보복으로 '차이나로드'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이번 기회에 해외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아모레퍼시픽은 서경배 회장 지시로 동남아·중동·미주 등 시장을 공략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생활건강, 잇츠스킨, 토니모리, 엘앤피코스메틱 등을 비롯해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제조업계도 다른 국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만 바라보며 가성비로 승부했다면, 이제 세계를 상대로 제품력과 브랜드 파워를 키울 때가 왔다. 단기 실적에 연연해 전략없이 서두르기 보다는 한템포 쉬어가는 것도 좋다. 더 멀리, 더 오래 뛰려면 숨을 고르는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가.
[우보세]차이나로드 빨간불…'K뷰티'의 한템포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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