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 기대했던 삼성 지주사…예고됐던 백지화 수순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이정혁 기자 2017.04.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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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전량 소각, 재추진 논란 원천봉쇄…이 부회장 '경영성적으로 오너십 인정받겠다' 생각 강해

시장만 기대했던 삼성 지주사…예고됐던 백지화 수순


"우리는 여러 이유로 지주회사로 갈 수도, 갈 계획도 없는데 당신네들은 왜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우리가 지주회사로 간다는 리포트를 내나?"(삼성 고위 관계자)
"우리도 삼성이 지주회사로 당장 갈 수 없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시장은 이벤트를 필요로 한다. 일말의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부밍(Boomming)을 할 수밖에 없다. 이해해라."(국내 주요 증권사 CEO)

몇 년 전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이슈가 한창일 때 기자가 삼성그룹 사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증권사 사장인 친구와 저녁시간에 나눈 대화 내용이다.



27일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의 지주사 전환 백지화 결정은 예고된 결론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당시 사실상 일단락된 상황에서 굳이 법적 규제와 막대한 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지주사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애초부터 높지 않았다는 게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의 얘기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있어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을 때도 일각에서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자 시장 혼란을 조기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말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밝혔지만 이보다 한 달 빨리 백지화 방침을 발표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날 이사회에서 시가로 40조원이 넘는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재추진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상징적인 조치라는 설명이다. 지주사 전환과정에서 회사를 인적분할하면 의결권이 생기는 자사주를 지주사나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동안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끊이지 않았던 단초였기 때문이다.

이명진 삼성전자 전무도 이날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지주사 전환에 대해선 향후에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실익 없어…"잠정중단 아닌 폐기"=삼성전자가 이날 밝힌 대로 지주사 전환에는 상당한 경영상 부담이 따른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과 보험업법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할 경우 현재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 또는 전량을 매각해야 할 수 있다. 지분정리 과정도 복잡하지만 그룹의 핵심 주축인 삼성전자 주가를 흔들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부담이다.


계열사 보유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개별회사의 이사회와 주주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도 넘기 쉽지 않은 산이다.

또 다른 문제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으로 삼성전자의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공정거래법 시행령상 일반지주사 요건(해당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 중 계열사 투자자산이 50%를 넘는 경우)에 걸리게 되면 2년 안에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4.25%에서 20%로 끌어올리거나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지분 20% 확보에 들어가는 자금이 40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추가지분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한 방안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선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과 삼성물산 합병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이 있지만 합병비율에 따라 오히려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험에 노출되거나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지주사 설립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지분은 매각해야 하는 상황도 맞을 수 있다.

최근 정국 주도권을 쥔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 개정안이 추진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지난달 자사주 의결권 제한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 처리를 합의했다. 기업이 인적분할할 때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명진 전무는 "지주사 전환은 이사회 결의 후 완료시까지 5개월에서 1년까지 소요된다"며 "법 개정은 그 기간에 언제든 시행 가능한 리스크가 있다"고 밝혔다.

◇"경영성적표로 오너십 승부"=지주사 전환 백지화 이후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이 현재 지분을 유지하면서 삼성전자를 경영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이건희 삼성 회장(3.5%), 이 부회장(0.6%) 등 오너 일가와 계열사가 가진 삼성전자 주식을 합치면 18.2%다.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50%를 넘어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사실상 현재 지분구조로도 실질적인 오너십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주주도 최근 삼성전자의 경영 성적이나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 불만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9조8984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2위를 기록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시장에선 메모리반도체 시장 호황에 힘입어 올해 영업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평소 지분율 못지 않게 경영성적을 통해 오너십을 인정받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이날 발표에 이 부회장의 강한 의중이 반영됐다고 본다. 이 부회장은 지주사 전환 철회에 대해 옥중보고를 받고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순환출자는 모두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러 계열사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과 시점을 찾아 해소하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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