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레터]문재인 '동성애 반대' 발언이 아쉬운 이유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7.04.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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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동성혼 반대'로 급수습 '해프닝'…동성애는 찬반·호오 대상 아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동성애에 반대한다."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5일 JTBC·중앙일보·한국정치학회 주최 4차 TV토론에서 한 '동성애 발언'이 논란이다. 문 후보는 이날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결국 명시적으로 "반대"를 언급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추진했던 게 차별금지법인데 그것으로부터 후퇴한 문재인 후보께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토론 후반부 홍 후보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자 문 후보는 동성애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는 반대"라고 입장을 일부 수정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방송 직후 긴급성명을 내고 "대선후보 TV토론이 혐오발언으로 점철됐다. 성소수자들 앞에 참회하라"며 "동성애는 불법이 아닌데 그(문 후보)는 비상식적인 질문에 뻔뻔하게도 반인권을 커밍아웃했다. 성적지향은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니며 자연스러운 인간 특성의 하나"라고 꼬집었다. 26일 국회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성소수자 단체 회원 10여명이 기습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문 후보 선대위 캠프측은 동성애 관련 질문에 '선방'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문 후보측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아직 합법화는 이르다. 성소수자들은 실망이 컸겠지만 다른 쪽 생각도 해야 한다. 계속 이 기조로 간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동성애 찬성보다는 반대 의견이 다수인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행사 중 성소수자들이 문 후보의 동성애 관련 발언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뉴스1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千軍萬馬)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행사 중 성소수자들이 문 후보의 동성애 관련 발언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뉴스1
한국 사회에서 대중 정치인에게 '동성애'는 어려운 주제다. 동성애 관련 어떤 발언이든 반대편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보수·개신교 시민단체는 선거 때마다 '동성애 옹호 후보'라며 낙선대상자를 발표한다. 반대 진영에선 이를 이용해 색깔 논쟁을 펴기도 했다. 일례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2013년 강간죄 적용대상을 확대해 동성간 성폭력 처벌을 강화한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동성애를 허용하는 법'으로 왜곡돼 기독교단체와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동성애 옹호자'란 낙인을 들어야 했다.



'차별금지법'도 뜨거운 감자다. 성별·장애·나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피부색·출신지역·용모·학력·혼인상태·종교·정치적 성향·가치관·성적지향·성정체성 등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 금지된단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진영에 의해 '동성애 촉진법'으로 규정된 지 오래다. 2007년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로 추진된 이래 17~19대 국회에서 입법에 실패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이 2013년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으나 수개월간 조직적으로 이어지는 반대집회와 서명운동 등을 이기지 못하고 항복, '폐기'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의 동성애 관련 '말'은 바뀌기 일쑤였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도 논란 끝에 서울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조항'을 삭제했다. 유엔에서 성소수자 인권 옹호에 앞장서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후 대권 가도에서 "동성애를 하라고 권장하는 게 아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문 후보 역시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번 대선에선 입장을 바꿨다. 표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의 '변심'을 마냥 비난하긴 어렵다. 다만 문 후보는 '동성애 반대'라는 경솔한 발언을 부리나케 '동성혼 반대'로 수습함으로써 스스로의 올바르지 못함을 인정한 꼴이 됐다. "동성애는 찬반을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도의 정치지도자라면, TV 앞에 앉아 자신의 입을 쳐다보고 있는 '그들'(성소수자)이 있음을 알았다면 그의 발언은 마음 속에서부터 걸러지고 정제된 것이어야 했다. 그들의 고통과 눈물과 아우성을 염두에 둘 수 있었다면, 공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쉽사리 '반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등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아서는 안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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