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대우조선해양과 세렝게티의 법칙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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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동식물 군집 보호구역인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동물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가(영상, 사진작가 등)들에게는 꼭 지켜야 할 불문율이 하나 있다.

"그 어떤 경우라도 군집 내의 생로병사에 관여하지 마라"는 게 그것이다.



150만 헥타르에 서식하는 약 3000마리의 사자 무리와 120만 마리가 넘는 누(Wildebeest), 약 20만 마리의 얼룩말 외에 톰슨 가젤과 영양 등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이곳에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많다.

어린 초식동물의 죽음과 포식자들의 포악해 보이는 사냥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 '약자를 살려야 한다'는 동정심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생태계 내에 인간의 인위적 손길이 닿는 순간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세렝게티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만다. 사냥에 쫓기는 어린 톰슨 가젤을 살리기 위해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다른 어린 톰슨 가젤이 희생되거나 사자의 어린 새끼들이 굶어 죽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계의 생로병사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진화의 과정이며,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그대로의 과정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유일하게 통제되는 것은 인간에 의한 생태계의 파괴다. 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자연의 생태계의 변화도 관여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기업의 생로병사의 과정도 초원이나 정글의 생태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다른 게 있다면, 기업은 망하더라도 사회가 그 구성원을 안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차이다.


또 다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책 당국의 지원이 결정됐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로 국민의 세금을 들여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둔 지 벌써 17년째다.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지원 이유로 정부나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노동자와 그 협력업체 노동자 및 가족들의 안녕을 내세웠다. 국가 전체의 리스크도 얘기했다. 듣기 좋은 얘기다. 누가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살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세렝게티에는 이 회사 외에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도 있고, 삼성중공업 노동자도 있다. 이 초원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엄연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쟁자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기업이 도태되지 않고, 국민의 혈세로 견디면 뒤를 받혀주지 않는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이 살 길을 잃는다.

2013년과 2014년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의 분식회계를 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일 때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뒤를 받혀주는 정부가 없으니 각자도생을 해야 했다.

2013~2016년 사이 대우조선해양이 정부로부터 수조원의 자금을 지원받는 동안 현대중공업의 직원은 대우조선해양보다 2배가 많은 4200명 가량이 줄었다.

벤담주의자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도 어긋날 뿐더러, 누구는 정부가 도우고, 누구는 각자도생해야 하는 측면은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에도 맞지 않다.

특히 그 이면에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이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믿는 '힘 있는' 사람들이 생태계의 생로병사에 관여한다고 할 때는 더욱 그렇다.

17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은 여전히 한국의 산업계는 미숙해 케인즈식으로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대주주가 책임지지 않는다며 한진해운을 공중분해했다.

그러면서도 대우조선해양만은 유독 보살피고 있다. 정부의 관여로 살아남은 가젤을 대신해 비틀어진 생태계에서 희생되는 세렝게티의 다른 초식동물들의 눈물과 희생은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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