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조차 힘든 세월호' 공지영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내 역할"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4.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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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년만에 새 소설집 낸 공지영 작가…단편 소설 5개와 산문 1편 실린 소설집

공지영 작가. /사진=김고금평 기자<br>
공지영 작가. /사진=김고금평 기자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드러낸 공지영(54) 작가는 내면적이거나 애써 무심한 척했다. 별 탈 없다는 듯한 표정에선 수많은 곡절이 읽혔고, 뛰어난 장편 작가의 긴 호흡처럼 말이 넘칠 법한데도 최대한의 절제로 숨을 죽이는 듯했다.

3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3년 만의 새 단편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공 작가는 단편 소설처럼 간단하지만 명료한 언어로 출간 소회를 밝혔다.



“세월이 너무 쏜살같이 흘러가네요. 이대로 흘러가면 마지막 작품집을 내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지금까지 장편 속에 담지 못한 편린들을 단편으로 담았는데, 기쁘고 설레요.”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단편 5개와 후기 형식의 짧은 산문 1편이 실린 새 작품은 기존 작품에서 또렷이 제시하던 힘 있는 외향적 시각과는 투영 방향이 다르다. ‘공지영’이라는 이름의 등장인물을 통해 좀더 내면적인 세계에 천착했다고 할까.



“이 작품을 보면서 제가 이렇게 바닥에 내려갔었나 하고 놀란 측면이 있어요. 그래도 삶의 바닥에서 책을 통해 치유 받은 경험이 있기에 이 책을 낼 마음을 먹었거든요. 제가 받은 상처가 주체가 됐을 때 이를 대상화하는 것이 보편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단순히 제 이야기가 아닌, 객관적으로 보편적 확신을 향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치유의 힘은 결국 문학의 역할이기도 하죠.”

올해 소설을 쓴 지 30년이 되는 해, 공 작가의 딸이 30세가 되는 해, 소설과 에세이를 합쳐 30권이 나온 해라는 특별한 기념식에서 그가 관통하고 싶었던 주제는 역시 ‘자의식의 집착’이었다.

“결국 상처받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 거예요. 표제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내세운 것도 상처받고, 어리고 약한 것들에 대한 지지와 연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공지영 작가가 13년 만에 단편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냈다. 3일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공 작가는 "2000년대 이후 써놓은 단편 5개와 산문 1편을 모은 것"이라며 "힘없는 대상에 지지와 연민을 보내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공지영 작가가 13년 만에 단편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냈다. 3일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공 작가는 "2000년대 이후 써놓은 단편 5개와 산문 1편을 모은 것"이라며 "힘없는 대상에 지지와 연민을 보내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공 작가는 작품 중 ‘할머니는…’와 ‘부활 무렵’을 대척점에 놓고 자의식의 정의와 가치를 되묻는다. 전자에선 한 노파의 이야기를 통해 2000년대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물결의 수혜자들, 즉 강한 것들, 기득권자들이 어떻게 약한 것들을 섭취하면서 화석화한 생명을 유지해 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자의 주인공 순례는 약하고 어리고 상처받은 ‘을’의 상징이다. 자신의 것은 상실해도 대상은 살려내고 치유하는 생명의 길에 동행하는 자의식의 건강한 발로다.

소설은 ‘대통령 탄핵’과 ‘세월호 참사’ 등 지금의 어지러운 세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공 작가는 “‘세월호 얘기’는 결부하는 순간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며 “다만 현실을 오래 들여다보면 과거, 현재, 미래를 투영하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이번 단편을 통해 ‘짧은 글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어요. 앞으로 더 짧은 단편도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동화 작가의 길도 걷고 싶고요.”

공 작가는 현재 장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해리’라는 제목의 소설로, 해리성 인격 장애를 다룬 주인공의 이야기다.

“악을 소재로 이야기인데, 요즘 너무 실제적 악들이 창궐해서 집필을 잠깐 멈추고 있어요. 무엇을 쓰든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무를 버리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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