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긋지긋한 '박스피' 차버릴 때

머니투데이 송기용 증권부장 2017.03.2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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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0포인트밖에 남지 않았다. 코스피 지수가 거침없이 상승해 2011년 5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2228.96)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21일 2178.38에 마감해 5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기록에 불과 50포인트만 남겨뒀다.

코스피 지수는 올 들어 3달간 150여 포인트, 약 7% 상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불확실성, 미국 금리인상, 중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대통령 탄핵을 비롯한 정치 불안정 등 산적한 악재를 돌파했다. 외롭게 지수를 끌어올렸던 삼성전자에 현대자동차, LG화학 등이 합류하면서 전형적인 강세장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강세장은 예상치 못한 결과다. 특히 전고점인 2011년 이후, 길게는 대세상승기의 끝물이었던 2007년 이후 지속된 지긋지긋한 박스권 장세가 깨진 것은 뜻밖이다. 지난 10년간 증시는 1800을 바닥으로 하고, 2100을 고점으로 하는 박스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박스(box)'와 '코스피(KOSPI)'를 합쳐 만든 '박스피'라는 신조어가 국립국어원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이번 장세는 외국인이 주역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해 이후 코스피 시장에서만 16조원을 순매수해 개인, 기관 매물을 받아냈다. 박스권 매매에 익숙한 국내 투자자들이 2000, 2100선에서 쏟아낸 매물을 외국인이 매수하면서 지수를 끌어올린 것이다.



외국인 매수는 채권에서 주식으로의 글로벌 자금전환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금리인상을 경기회복 신호로 해석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채권에서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자금을 옮기면서 한국 증시에서도 매수에 나선 것이다.

통상 금리인상은 증시에 악재로 작용한다. 특히 미국 금리인상은 한-미 금리차 역전을 초래해 외국인 자금 유출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기회복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많았다. 이는 한국 증시에서 대세상승이 시작됐던 2004년을 연상시킨다. 미국 당국이 2004년부터 2년여간 금리를 1%에서 5.25%까지 올렸지만 경기회복을 기대한 외국인, 기관 쌍끌이 매수로 2007년까지 사상 처음 2000 포인트를 넘는 강세장을 누렸다.

근본적으로 외국인이 마음 놓고 베팅하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 조선 등 일부 업종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다수 기업 실적은 양호하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기업 순이익은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도 역대 최대인 140-150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호황)을 맞은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결기준 순이익이 전년대비 19.2% 증가한 22조7261억원으로 100조 시대 개막의 일등공신이 됐다. 맥쿼리증권은 삼성전자를 '메모리칩의 제왕'이라고 부르면서 올해도 영업이익이 70% 증가한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싸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지만 주가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인 PER(주가이익비율)가 지난 17일 기준 9.84에 불과하다. 인도(20.73), 미국(18.63)의 절반 수준이고 일본(16.04), 홍콩(15.47) 등 경쟁국과 큰 차이가 있다. 주요국 주가가 최근 수년간 급등할 때 우리만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한 결과다.

실적 좋고 주가도 싼 종목이 많지만 과실은 외국인이 독점하고 있다. 외국인 보유주식이 517조원으로 전체 시총의 33%에 달하고, 배당도 총 22조원 가운데 37%인 8조원에 달한다. 개인과 기관이 과거 박스피 장세만 생각하고 지금처럼 주식을 매도한다면 외국인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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