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 유가족들이 마련한 일명 '감시초소'. 먼 바다로 흐릿하게 세월호 인양작업 현장이 보인다. 일부 유가족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인양된 뒤에도 동거차도에 남아 해양수산부의 해저수색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사진=방윤영 기자
유가족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불신과 불안이다. 인양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동거차도 산 중턱에 만든 일명 '감시초소'에서 해저수색과정도 감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감시초소 말고도 유가족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있다. 바다와 맞닿은 절벽이다. 세월호 인양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24일에도 유가족들은 이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은 아찔했다. 폭이 좁은 데다 흐릿해 발을 헛디디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정도였다. 이 험한 숲길 곳곳에도 노란 추모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가족들이 한 걸음씩 걸으며 매단 리본이다.
노란 리본을 이정표 삼아 10분쯤 걷다 보면 평평한 길이 나 있다. 이 길 끝이 절벽이다. 절벽 끝에 매달린 돌에는 흐릿하지만 '유미지'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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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을 돕는 '삼촌'(자원봉사자) 임명우씨는 "단원고 2학년1반 반장이었던 유미지양 덕분에 많은 학생이 살았다고 한다"며 "(학생들) 엄마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에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지양은 세월호 참사 당시 "침착하자" "물이 차면 몸이 뜬다"며 친구들을 격려했다고 전해졌다. 많은 친구를 살렸지만 유양은 끝내 세월호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절벽을 타고 바다를 향해 더 내려가면 3.3~6.6㎡(1~2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유가족들은 2015년 9월1일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세월호 침몰 490일 만에 세월호 인양작업이 시작되자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양수산부가 중국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 최종 선정 이후 같은 해 8월19일 첫 수중 수색이 이뤄진 이후다.
당시 태풍으로 절벽 위 텐트는 이틀 만에 철수해야 했지만 대형 현수막은 그대로 남았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썼다. 혹시라도 중국 '상하이샐비지' 관계자들이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이달 26일로 가족들의 '절벽 기다림'도 573일이다. 계절이 6차례 바뀌는 동안 현수막은 바람에 찢기고 세월에 해졌다.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가 운반된 이후 침몰 해역 주변에 잠수부를 투입해 수색을 벌인다. 인양과정에서 미수습자나 유류품이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어 바닷속을 샅샅이 뒤진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동거차도에 남은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해수부가 해저수색작업을 시작하면 배를 타고 나가 과정을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동거차도에 남은 유가족은 혼잣말을 되뇐다. 그래도 절벽을 떠날 수 없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에는 모든 인양·수습작업이 완료되길 바랄 뿐이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에 걸린 현수막.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5년 9월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걸었다. 이 현수막은 유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사진제공=4·16가족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