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에 걸린 현수막.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5년9월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내걸었다. 이 현수막은 유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에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사진=4.16가족협의회 제공
세월호 사고 해역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는 마음이 유가족의 발걸음을 절벽까지 이끌었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산 중턱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는 말 못할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동거차도는 세월호 사고 해역과 약 2㎞ 떨어진 곳이다. 산 중턱에 올라서면 탁 트인 바다를,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으로 향하는 오솔길.(왼쪽) 숲길 중간중간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리본을 이정표 삼아 걸으면 절벽으로 갈 수 있다./사진=방윤영 기자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서 바다와 맞닿은 절벽으로 향하는 길(왼쪽). 이 길 끝에 절벽이 있다. 절벽 끝에 매달린 돌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미지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빨간색 원 안)/사진=방윤영 기자
유가족들을 돕는 '삼촌'(자원봉사자) 임명우씨는 "단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유미지양 덕분에 학생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며 "(학생들) 엄마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에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유미지양은 세월호 참사 당시 "침착하자", "물이 차면 몸이 뜬다"며 친구들을 격려했다고 전해졌다. 많은 친구들을 살렸지만 유양은 끝내 세월호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절벽을 타고 바다를 향해 더 내려가면 3.3~6.6㎡(1~2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유가족들은 2015년 9월1일 이곳에 텐트를 치고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세월호 침몰 490일 만에 세월호 인양 작업이 시작되자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양수산부가 중국 인양 업체 '상하이 샐비지' 최종 선정 이후 같은 해 8월19일 첫 수중 수색이 이뤄진 이후다.
당시 태풍으로 절벽 위 텐트는 이틀 만에 철수해야 했지만 대형 현수막은 그대로 남았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썼다. 혹시라도 중국 '상하이 샐비지' 관계자들이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이렇게라도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달 26일로 가족들의 '절벽 기다림'도 573일이다. 계절이 6번 바뀌는 동안 현수막은 바람에 찢기고 세월에 헤졌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절벽 아래 1~2평 남짓한 곳. 유가족들이 한때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세월호 인양 현장을 지켜봤다./사진=방윤영 기자
동거차도 절벽은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 이름 한명씩 부르다 한참을 울고 가는 통한의 장소가 됐다. 세월호가 하루빨리 인양되길 기원하는 기다림의 장소다.
세월호 인양 작업이 한창이었던 24일에도 유가족들은 이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다. 올 4월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에는 모든 인양·수습 작업이 완료돼 그 누구도 이 절벽을 찾지 않아도 되길 기대할 뿐이다.
3년 만에 세월호를 목포신항으로 보내고 있는 잔잔한 바다가 그나마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통한의 기다림이 이제야 작은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