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대우조선 80년의 지난한 생명력의 끝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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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에 대한 정부지원은 도와줘서 경영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전제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 대우조선 지원에 대한 정부나 산업은행의 발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88년 12월 21일 이규성 당시 재무부 장관의 말이다.

이 장관은 당시에도 부실로 어려움을 겪는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을 고민하면서 4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30년 전 지원된 금액은 1500억원으로 현재로 치면 1조 5000억 정도 됐음직하다.



당시 이 장관은 대우조선 자체의 경영쇄신방안과 근로자의 자세, 사업성, 대우그룹의 자구노력 등을 감안해 지원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또 대우조선에 거액을 출자한 산업은행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0년이 지나면서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대우조선을 향한 정부의 목소리도, 대우조선의 자세도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또 대우조선해양을 살리는데 무게 중심을 두고 5조 8000억원이 넘는 금융지원 방안을 내놨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 9000억 원을 지원하고, 채권단과 사채권자가 보유한 부채 2조 90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형태의 지원 방안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살아나고, 그 기업에 종사하는 종업원과 그 협력사 및 그 가족들이 실직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스스로 생존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좀비영화에 나오는 좀비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희생에 대한 당위성과 명분만 있다면 희생도 감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인이 전쟁에 나가 한 몸 희생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웃과 시민의 안녕과 이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을 위해 국민의 주머니에서 십시일반으로 세금을 걷어 연명해야 한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그 명문을 지키기 위한 자기 희생이 따라야 한다. 스스로의 희생을 감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희생에만 의존해 생존한다면 '좀비기업'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과거 지나온 과정을 보면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지원을 탐탁해하지 않는 여러 이유를 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2000년이지만,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이 시작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의 연혁 자료를 보면 일제 강점기인 1937년 6월 4일 '조선기계 제작소'가 출발점이다. 해방이 된 1945년 8월 정부에 귀속됐다가 1963년 5월 한국기계공업(주) 법에 의거해 국영기업체로 재발족됐다. 1973년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로 본격적인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의 관리를 받은 게 최근인 2000년부터로 알려져 있지만, 이 회사는 1975년 7월에도 한국산업은행이 전면관리하던 회사다.

그 이후부터 대우조선해양은 1989년(유동성 지원), 1999년(워크아웃), 2000년(산업은행 자회사), 2015년(4조 2000억원 지원), 2017년 3월 등 산업은행과 40년간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대우조선해양이 어려워질 때마다 명분은 대량실업과 국가 경제의 파장을 이야기했고, 그 때마다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사실상 주인 없는 대우조선은 전임 사장이 5조원이 넘는 대규모 분식회계를 통해 적자인 2013년과 2014년을 흑자로 둔갑시켰고, 사장과 임직원들은 대규모 성과급과 격려금을 챙겼다.

또 시추선사업부에서 근무했던 임모 차장은 2015년까지 8년 동안 회삿돈 200억원을 횡령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모럴헤저드의 극치다.

이제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여부는 정부나 국민의 지원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올 곧이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대우조선해양의 자기희생만이 생존의 열쇠다. 더 이상 국민은 속지 않는다.
오동희 산업1부장오동희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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