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강국에서 이젠 지능정보 추격자 신세.."'개방·협력' 생태계 재구축해야"

머니투데이 임지수 기자 2017.03.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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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없는 잔젱 '4차산업혁명'上] 지능정보사회 韓 운명은

편집자주 전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첨단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국가간·기업간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 기술 경쟁력에 따라 향후 국가 경제 패러다임이 좌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보화 사회(3차 산업 혁명)와 달리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미래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제도적 정비 또한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공지능(AI)·로봇 등 지능정보 기술이 인류사회에 제공하는 편의 이면에는 일자리 감소나 양극화 등의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지능정보 기술,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사회적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 살펴본다. 아울러 이에 걸 맞는 바람직한 정부 역할과 효율적인 정부 조직 체계도 짚어봤다.

# 출근 전 거실 앞 TV와 냉장고가 오늘의 날씨와 교통 정보를 말해주고 출근길 자동차가 미팅 일정까지 알려준다. 170㎞로 달리는 차량의 차창 밖 상황을 중앙 관제실의 가상현실(VR) 기기로 마치 차 안에서 보듯 모니터링 하는 세상. 지난달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 행사에서 보여준 4차산업 혁명 시대의 한 단면이다.

초연결·초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 여파로 사상 최대 격랑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도 발등의 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 IT(정보기술) 강국으로서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만큼 이를 제대로 활용할 경우 지능정보 강국으로 재도약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


◇韓 4차산업 대응, 선진국에 뒤져…ICT글로벌 순위도 후퇴=현실은 녹록치 않다. 글로벌 금융그룹 UBS가 지난해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도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세계 45개국 가운데 25위에 그쳤다. 미국이 5위, 일본이 12위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139개국 대상국 가운데 노동 시장은 83위, 법률 시스템은 62위에 각각 머물렀다. 중국의 경우, 전체 평가에선 한국보다 단계 낮은 28위지만 주요 첨단기술 분야에선 벌써 우리나라를 앞지르거나 격차를 좁히고 있다는 게 학계 및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우리나라는 1990년 후반만 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MP3 플레이어를 개발하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전화 상용화에 잇따라 성공하며 ICT 최강국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공유경제 서비스 등 최신 신기술 분야에선 글로벌 선두업체를 뒤쫓는 처지다. 오히려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한국기업들을 추격하며 ‘샌드위치 신세’다.



실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기술경쟁력 평가 중 ICT 산업에 관련된 기술 인프라 순위는 지난 2010년 18위에서 2014년 8위까지 꾸준히 상승하다 2015년 13위, 지난해 15위까지 추락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능정보사회 종합대책’을, 산업자원통상부가 ‘제조업 혁신 3.0’을 추진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대응 계획을 내놨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선도국인 미국은 2013년 9월에 ‘AMP2.0’이라는 핵심전략을 수립해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독일 역시 2011년 4월 ‘인더스트리4.0’ 전략을 세우고 민관이 합심해 대응하고 있다.


◇인프라 경쟁력 여전…ICT 생태계 재구축 나서야=아직은 늦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적인 ICT 인프라를 활용할 경우 충분히 주도권을 확보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T, SK텔레콤 등 국내 주요 통신사들은 5G 이동통신 기술을 2019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5G는 4차산업 혁명을 실현할 ‘대동맥’이다.

이같은 인프라 선도 전략을 기반으로 ‘개방’과 ‘협력’을 키워드로 국내 ICT 생태계를 재구축하는 전략이 시급하다. 특정 산업에서 특정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를 넘어 이기종 산업간 칸막이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디바이스(D) 사업자들이 전략적으로 융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인수(M&A)와 신사업이 쉽게 태동할 수 있는 정부의 규제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융합되면서 기존의 제도로는 규정할 수 없는 신기술·신사업의 등장·발전하는 것에 대비해 유연한 규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ICT 정책연구소 소속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미국 등 여타 선진국들은 시장이나 기술을 열어놓고 문제점을 사후에 보완하는 방식을 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시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규제를 먼저 만들어왔다”며 “지금까지의 환경에서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통했을 지 모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보다 유연한 규제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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