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서체장인..안상수체' 안상수…"디자인 교육 새실험"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7.03.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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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날개, 파티'전…시각디자이너 안상수가 설립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조명

'안상수체' 글자를 나타낸 작품 '안상수체로부터'/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안상수체' 글자를 나타낸 작품 '안상수체로부터'/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 IT업계의 신화가 된 스티브잡스가 사업초기부터 집착했던 건 서체였다. 한글을 사랑한 고집쟁이 안과의사로 알려진 공병우도 공한체 등 서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 서체는 폰트나 글씨체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 획들에는 집념도 있고 사상도 있다. 안상수체의 타이포그라퍼 안상수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글자라고 디자인했나?"



힐난부터 돌아왔다. '안상수체'로 처음 포스터를 만들었을 때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고 '이게 뭔가 되려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상하죠?"

시각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라퍼 안상수씨는 15일 저녁 '안상수체' 탄생 과정을 이렇게 반추했다. '아래한글' 프로그램에 기본 서체로 등록돼 있어 더 친숙한 '안상수체'는 가장 유명한 한글 글꼴 중 하나다.



이 글꼴은 받침이 중성의 정중앙에 위치해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을 준다. 정사각형 모양의 '바탕체'와 '고딕체'만이 익숙했던 1985년, 네모난 틀을 깬 '안상수체'의 등장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그의 작업은 문자가 언어에 종속된 기호가 아닌 형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갖는 요소임을 알리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기도 했다.

시각디자이너 겸 타이포그라퍼 안상수는 5년 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를 설립, 새로운 디자인 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학교는 올해 초 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시각디자이너 겸 타이포그라퍼 안상수는 5년 전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를 설립, 새로운 디자인 교육을 실험하고 있다. '학교는 올해 초 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안씨는 "처음 타자기를 개발한 사람들부터 기존 한글의 틀을 깨려는 시도는 계속 있어왔다"며 "컴퓨터공학자들이 기계적으로 접근했다면 (나는) 디자이너의 눈으로 한글의 조형원리를 파고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한국 디자인계 대표적인 회사로 자리 잡은 디자인연구소 '안그라픽스'를 설립해 디자이너로 20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다시 20년을 살았다. 예순이 되던 2012년, 그는 "교육을 디자인하며 남은 삶을 살겠다"고 '커밍아웃'을 한다. 그리고 경기도 파주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파티)를 설립, 교장이 된다. 일종의 '디자인 학교'다. 그는 순우리말로 '멋짓(디자인) 배곳(학교)'이라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현재 교육은 스타 화가를 만들어내 돈을 많이 번다든가 대학교수가 된다든가 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죠. '파티'는 삶에 훨씬 더 밀착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파티'의 배움과정은 여느 미대의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입학하고 첫 프로그램은 배우미(학생)가 생활할 작업 공간과 책상을 스스로 만드는 '내 공간 멋짓기'다. 철학, 미학, 역사, 독서와 글쓰기, 시, 우주론, 경제학 등 다양한 인문교양수업도 이어진다. 2013년 1기가 들어와 올해 초 14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안씨는 "우리 교육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머리만 숭상하고 몸을 억압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대한 철학을 고민할 수 있는 '동의학' 수업도 개설했다"며 "배우미들과 스승이 함께 고민하며 배움 과정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날개, 파티'전에 옮겨 온 '파티' 아카이브 전경/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 '날개, 파티'전에 옮겨 온 '파티' 아카이브 전경/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은 안씨와 '파티'를 초청, 그의 작품을 돌아보고 디자인 교육의 미래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날개, 파티'전(3월 14일~5월 14일)을 연다. 타이포그라피, 편집 디자인, 포스터 제작, 문자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읽는 글자'에서 '보는 글자'로의 전환을 이끈 그의 작업물을 한곳에 모았다. 전시장 한쪽엔 '파티'의 교실을 통째로 옮겨 종합적인 성과와 기록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기간 동안 '파티' 커리큘럼에서 선별한 연극, 타이포그라피, 코딩, 생활기술 등 다양한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파티'는 '건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등을 함께 가르치고 연구한 독일의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처럼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바우하우스'는 교육기관을 넘어 하나의 디자인 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바우하우스'는 많은 평론가들이 하나의 '이념'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지난 100년 간 세계의 예술·문화·디자인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죠. '파티'도 바우하우스처럼 '디자인이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교육적인 실험을 해 나갈 겁니다."

도자기타일에 한글을 표현한 안상수 작품 '도자기 타일'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도자기타일에 한글을 표현한 안상수 작품 '도자기 타일'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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