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옷가지들을 태우고 나자 형제들은 각각 삶터로 떠난다. 어머니가 혼자 살던 빈집만 남았다. 요즘의 장례 풍속도를 여실히 그린 작품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는 이 시가 서기 2010년대 한국의 장례문화와 가정사를 연구하는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
오래 신지 않은 신발들을 골라내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신발장 깊은 곳에서 툭 떨어진다
빨간 자동차 무늬가 그려진 작은 운동화 한 켤레
첫 걸음마를 배우던 그때
아이는 저 작은 신발을 신고
뒤뚱뒤뚱 넘어질 듯 나를 향해 걸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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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뼉을 치며 응원하던 그때 내 얼굴은
흐드러진 벚꽃 웃음처럼 봄날이었다
이제 아이는 나룻배 같은 커다란 신발을 신고
품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갔다
헐렁해진 신발장처럼 텅 빈 가슴속에 바람이 분다
- ‘신발장을 정리하며’ 전문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아이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아이의 성장과 함께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그때 내 얼굴은/ 흐드러진 벚꽃 웃음처럼 봄날이었다”고 암시한다. 이제 아이들은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신던 작은 신발이 아닌, 나룻배처럼 큰 신발을 신고 품을 떠났다고 한다.
시집의 표4에 필자가 언급했듯, 유병란 시의 기반은 성장기에 체화된 농촌 서정이다. 시인의 성장배경인 농촌의 기억과 가족사를 비롯하여 이웃 주변부의 삶으로 서사를 확장해간다. 이를테면 청평사 입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고 반찬을 만들기 위해 푸른 개망초 잎을 뜯어서 삶아 말리던 오래전 엄마를 떠올리고 있다.
쉬는 날보다 일하는 날이 더 많았던 아버지가 이른 새벽부터 소죽을 끓여 자신의 밥보다 먼저 어미 소에게 밥을 주던 세 살 때의 희미한 기억을 시로 발굴해내기도 한다. 소금밭에서 일하는 건강한 염부와 물질을 하는 칠순의 해녀, 보도블록 사이에 자라난 들꽃의 푸른 생명력 등 주변부의 인물과 동식물들이 화엄을 이룬다.
◇엄마를 태우다=유병란 지음. 현대시학 펴냄. 126쪽/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