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기억력'은 억울해"…우리가 몰랐던 물고기의 진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7.03.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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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읽읍시다] <18> 물고기는 알고 있다

편집자주 과학은 실생활이다. 하지만 과학만큼 어렵다고 느끼는 분야가 또 있을까. 우리가 잘 모르고 어렵다며 외면한 과학은 어느새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이름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우리 앞에 섰다. ‘공상’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더 익숙한 과학을 현실의 영역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더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로 과학을 방치할 수 없다. 과학과 친해지는 손쉬운 방법의 하나는 책 읽기다. 최근 수년간 출판계 주요 아이템이 과학이란 것만으로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과학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싶은 독자라면 ‘과학책을 읽읍시다’ 코너와 함께하길 기대한다. 연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선정한 우수 과학도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3초 기억력'은 억울해"…우리가 몰랐던 물고기의 진실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물고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물고기는 늘 별종이다. 조용하고 무표정하고 다리가 없으며 그저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자신의 시 '물고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떼 지어 헤엄을 친다/그러나 소리도 없고, 서로 접촉하지도 않는다/말도 없고, 몸을 떨지도 않고심지어 화내지도 않는다."



'3초 기억력'을 지닌 멍청한 동물 또는 고통도 눈물도 모르는 냉혈동물…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물고기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두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항이나 바다 속에서 눈과 입을 껌뻑이는 물고기들은 '사냥감' 아니면 '식량'으로만 치부돼왔다.

책 '물고기는 알고있다'는 이 같은 인간의 편견에 '돌직구'를 던진다. 인간은 물고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저자 조너선 밸컴은 최신 과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물고기의 감각과 느낌, 생각과 사회생활, 번식 등 다양한 측면을 설명한다.



저자가 방대한 저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물고기는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하고, 고도로 진화한 생물이며, 동시에 인간과 너무도 닮은 우리의 '사촌'이라는 것이다. 특히 다른 물고기에게 마사지를 해주거나 기생충을 제거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 놀라울 정도로 인간사회의 역학과 비슷하다.

저자는 "청소부 물고기와 고객 물고기 간의 공생관계는 자연계에서 가장 잘 연구된 복잡한 사회시스템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 마리의 청소놀래기는 100마리 이상의 다양한 고객들을 구별한다. 심지어 이들과 마지막으로 상호작용한 날짜도 기억한다.

그는 "청소부와 고객의 공생시스템은 신뢰에 기반한 장기적 관계, 범죄와 처벌, 까다로움, 관중 의식, 평판, 아첨을 포함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라며 "사회적 역동성은 물고기 사회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의식 수준과 정교함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물고기들도 조금씩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어항에 금붕어를 한 마리만 기르는 것은 불법이 됐다. 스위스에서는 낚시꾼들이 '인도적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고, 노르웨이에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물고기에게 충격을 주는 것을 금지했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온 시간을 1초라고 가정할 때 물고기는 4분이 넘게 살았다. 인류보다 훨씬 전인 5억 300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다. 물고기의 주 서식지인 전 세계 바다 중 인간이 현재까지 탐사한 부분은 겨우 5%에 불과하다. 척추동물의 60%를 차지하는 물고기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의 종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종수를 자랑한다.

이쯤 되면 섣불리 물고기를 판단해온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책은 '인간중심주의'란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시원한 일격을 가한다.

"우리가 물고기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노는 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낚시바늘에 꿰여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로봇 물고기(과거 강 수질을 살펴본다며 발명(?)했다는 장비), 명태 눈깔, 붕어 대가리…. 물고기를 빗대어 희화화하는 어휘는 많다. 하지만 책을 읽고서는 그런 단정이 또다른 편견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에이도스 펴냄. 384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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