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지나친 주관성 극복해야 할 때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7.03.0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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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시평]지나친 주관성 극복해야 할 때


춥고 지루하던 겨울이 언제쯤 지나가나 싶었는데 어느덧 3월이 되어 여기저기서 봄의 내음이 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털고 밖으로 나오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여러 신호를 볼 수 있다. 새싹을 보고, 꽃을 보고, 대지를 가르며 다시금 흐르는 강물을 본다. 이처럼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우리에게 봄은 적어도 이러한 의미의 계절이다. 이처럼 대부분 사람은 봄을 서로 비슷하게 보고 이해한다.

그러나 봄을 공유하는 인식과 달리 때로 우리는 사회적 현상이나 사건에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해석과 행동의 문법을 보면 상이한 두 입장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더욱이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장의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동일한 사건을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보고 행동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왜 그럴까?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그 인식의 틀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발달시켜온 결과물이다. 막 태어난 아이는 아직 세상을 볼 수 있는 나름의 틀을 갖지 않은 상태에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감각적인 수준에서 그대로 반응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눈 깜빡임 반사다. 우리는 눈앞 가까이에 갑자기 어떤 자극이 나타나면 그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 지적 능력이 발달하면서 아이는 세상은 어떻다는 식의 틀, 즉 주관적인 인식의 틀을 구축해간다. 이런 주관성 때문에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판단하게 된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주관성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주관은 끊임없이 객관적인 사실과 비교하면서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주관은 결국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이고 비사실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상, 즉 정상이 아닌 것은 객관을 반영하지 못하는 주관을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객관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어떻게 정의하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여러 학술적인 발견, 물리적인 증거나 직접적인 행동의 관찰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주관이 이와 같은 공유된 인식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객관적 사실이 어떠한지를 개방적이고 공정하게 알아보고 고려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대로 자신의 주관이라는 강한 틀 속에 갇혀 있으면, 세상의 참모습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왜곡된 주관성의 대표적인 현상이 종북과 좌파 혹은 수구보수골통과 같은 인식의 틀이다. 이러한 틀은 사람들을 단정적이고 이분법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둘 중 하나로 낙인찍어 버린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비적대적 대북관계를 주장하고 미국과의 동등한 외교를 강조하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좌파이고 종북이다. 또한 안보를 강조하고 경쟁과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현실적 주관성은 세상을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해서 폄훼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와 정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립자에 대한 물리학의 연구결과도 그렇고, 뇌에 관한 신경생리학적 연구도 그렇고, 우리의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철학적 사상도 그렇듯이 실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의 존재를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가 소모적인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비이성적 주관성을 극복해서 사회적 문제에 공유된 인식을 발전시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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