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 역사 없앴다"…손놓고 국적선사 파산 지켜본 금융위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17.02.17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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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작년 12월 이후 1조원 넘는 지원…해운업계 "한진 죽이고 현대 살린 금융위 결정 동의 못할 것"

한진해운 (12원 ▼26 -68.4%)이 17일 오전 9시경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아든다. 16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법원의 파산 선고는 예정대로 17일 이뤄진다.

이로써 1949년 대한해운공사 설립 이후 국내 해운·물류인들이 피땀 흘려 일궈온 한국 해운의 자산은 '무위(無爲)'로 돌아가게 됐다.



한진해운 파산과 관련해서는 현 정부에서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해온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의 책임이 크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금융위와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법정관리 전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에 대해 전혀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았고, 한진그룹의 추가 자구안 제출 이후 '1300억원의 간극'을 이유로 신규 자금지원 중단 결정을 내려 법정관리로 내몰았다.



반면 13위 선사 현대상선에 대해서는 경영정상화 3대 조건 중 하나로 내걸었던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정식 가입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3000억원 자금 지원, 다음달까지 한국선박해양을 통한 7500억원 자금 지원 등 지금까지 눈에 드러난 것만 1조원 이상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한진그룹은 2014년 4월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에스오일 지분 매각, 대한항공 유상증자, 부산신항만·평택터미널 매각, 한진해운 상표권 매입 등을 통해 총 2조2429억원(대한항공, ㈜한진, 한진칼 등 그룹 전체)을 지원했다. 이후 채권단이 2017년말까지 한진해운 부족자금 1조2000억~1조3000억원 가운데 한진이 7000억원을 지원하라고 했을 때도, 5600억원 규모 자구안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 지원하면 대한항공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융위는 한진해운이 용선료 협상과 채무재조정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법정관리 전 기준 독일 HSH 노르드 방크, 코메르쯔 뱅크, 프랑스 크레딧 아그리콜 등 해외 금융기관은 해운 선박금융 채권 상환유예에 대해 동의했다. 또 최대 선주사인 시스팬이 산업은행의 동의를 조건으로 용선료 조정에 합의하면서 용선료 협상 역시 타결을 앞두고 있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현대상선에 지금 투입되는 돈 1조원 이상을 그보다 훨씬 영업망이 잘 갖춰져 있던 한진해운에 투입해서 살렸었다면 한진해운 파산으로 한국 해운의 역사가 없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해운 역사 없앴다"…손놓고 국적선사 파산 지켜본 금융위


해외 선사들은 모기업의 지원도 받았지만, 정부의 지원도 받았다. 해운은 국가기간 산업으로 분류되고, 전시에 전략물자 수송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자국 수출입은행을 통해 머스크에 5억2000만달러(약 5900억원),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62억달러(약 7조원)를 대출해줬다. 이는 글로벌 저가 운임 경쟁에도 불구하고 머스크가 세계 1위 선사로 올라선 바탕이 됐다.

독일 함부르크시는 2012년 2월 하팍로이드 지분 20.2%를 7억5000만유로(약 9000억원)에 매입했다. 독일 정부는 이 회사 채무 18억달러(약 2조원)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다. 프랑스는 부도 위기에 빠졌던 자국 선사 CMA-CGM에 우리돈 1조원이 넘는 금융 지원을 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은행을 통해 108억달러(약 12조원)를, 중국초상은행을 통해 49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코스코(COSCO)에 지원했다. 일본 정부는 해운업계에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해준다.

한진해운은 1977년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설립했다. 1978년 중동 항로, 1979년 북미서안 항로 를 개설하며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했다. 1988년엔 대한선주를 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1949년 정부가 만든 대한해운공사가 대한선주의 전신이어서 한진해운은 국적 해운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한진해운 상황에 정통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한해운공사 출신 해운·물류인들이 '코리아'를 동맹으로 받아주지 않던 해외 선사들을 설득하고 미주·유럽 항로를 개척해 세계 7위 선사와 영업망을 만들었고, 해운 전문가들을 키워냈다"며 "이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을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과거 한진해운 직원이었던 김 모씨는 "금융위와 채권단에 개별 기업이 아니라 한국 해운을 살려달라고 한 것이었다"며 "현대상선만 살리고 한진해운에 사망선고를 내린 한국 정부와 금융위의 결정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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