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삼성 수요사장단회의란?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7.02.09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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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시작…현안논의 및 친목의 기능→외부강연 중심으로 변신하며 명맥 이어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사진=머니투데이DB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삼성 수요사장단회의는 삼성만의 매우 독특한 문화다.

매주 수요일 오전 8시~9시 국내 계열사 사장 30~40명이 삼성 서초사옥 39층에 모여 경제와 경영은 물론 국제, 정치, 인문에 두루 걸친 강연을 듣는다.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이 같은 모임을 운영하는 곳은 없다.

수요사장단회의가 생겨난 시점은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 회장 생존 당시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매주 수요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빌딩 회장 회의실에 모여 그룹 주요 사안들을 결정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됐다. 1959년 회장실 직속의 비서실이 생겨난 때부터 존재했는데 당시 비서실은 현재 미래전략실의 시초다.



이건희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은 뒤에는 수요 사장단 회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매일 출근했던 선대 회장과 달리 이 회장은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원거리 경영을 했는데 이 때문에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것보다는 교양강좌 및 그룹 전달사항을 전달하는 곳으로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2008년 삼성 특검 이후에는 '수요사장단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변신,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 인사위원회, 브랜드관리위원회 등을 두고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했다.



201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복귀와 맞물리면서 '수요사장단회의'로 거듭났다. 2010년 이후로는 완전히 외부 강사 초청 강연 중심 체제로 자리잡았다. 3대째 명맥을 이어온 대표적인 삼성의 문화인 셈이다.

수요사장단회의는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입원했을 당시에도 중단되지 않고 진행됐을 만큼 그룹 내 상징적 의미도 짙다. 사장단이 모여 업무를 조율하고 삼성이라는 유대감을 지키는 한편 외부와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로 기능해왔다는 평가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렸던 지난달 18일에는 이례적으로 전격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 총수 구속 여부를 다투는 그룹 최대 위기 상황 속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그룹 수뇌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 그 중에서도 '별들'이라 일컬어지는 사장단이 듣는 강연에 쏠린 관심도 상당했다. 삼성 수요사장단회의 강연 주제만 엮어서 책으로 출간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삼성수요사장단 회의는 1월6일부터 12월 21일까지 총 44차례 열렸는데 '가상현실 현황 및 기회' '포켓몬고 열풍으로 본 AR/VR 가능성' 등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강연은 물론 '세계 최고 CEO들의 경영철학'과 같은 경영기법, 국제정치, 인문사회 등 폭넓은 주제가 다뤄졌다.

그동안 사장단 앞에 선 강사의 면면도 화려했다. 허영만 화백이나 조훈현 바둑 기사,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이 강사로 나섰다. 강사로 초빙된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사장단이 기립 합창을 한 적도 있다. 삼성에 비판적인 조언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가 '경제민주화와 삼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삼성 사장단회의는 지난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그동안에는 각 분야 최고를 섭외하는 만큼 그동안 강연료로 수백만원이 지급됐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립대 교수 강연료는 시간당 100만원, 서울대 등 국립대 교수의 경우 20만~40만원 수준으로 제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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