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 ‘솟은 너’가 있으므로 ‘머금는 나’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촉발된 ‘~도’와 ‘더불어’ ‘좋다’라는 의미는 시 쓴 이의 사유를 반영한 것 아니겠는가.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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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반영’ 최근용(독자)
편집자주 디카시란 디지털 시대, SNS 소통환경에서 누구나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詩놀이이다. 언어예술을 넘어 멀티언어예술로서 시의 언어 카테고리를 확장한 것이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형상을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하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문자로 재현하면 된다. 즉 ‘영상+문자(5행 이내)’가 반반씩 어우러질 때, 완성된 한 편의 디카시가 된다. 이러한 디카시는, 오늘날 시가 난해하다는 이유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현대시와 독자 간 교량 역할을 함으로써 대중의 문화 향유 욕구를 충족시키에 충분하다.
하여, ‘솟은 너’가 있으므로 ‘머금는 나’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촉발된 ‘~도’와 ‘더불어’ ‘좋다’라는 의미는 시 쓴 이의 사유를 반영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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