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미인도 진작? 뭐가 무서워 감정위원 실명 공개 못하나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2016.12.22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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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 수사 관련 발설 금지 등 비밀 유지 방침, 감평원 '무기명 감정서 발행' 재탕?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배용원 형사6부 부장검사(왼쪽)가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배용원 형사6부 부장검사(왼쪽)가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고(故) 천경자 화백의 위작인지 논란을 겪는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작이란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감정위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질 조짐이다.

미인도 위작 시비 수사 과정에 참여한 감정위원 중 일부는 수사 당시 감정위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검찰에 거듭 반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를 수용하지 않는 데다 보안을 유지하라는 각서도 쓰게 했다.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미술계 인사 A씨는 2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검찰이 이번 수사와 관련한 사안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약을 요구했다”며 “감정을 다수결로 해선 안 되며 감정위원이 누구인지 공개하는 게 낫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검찰에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감정이란 다수결로 결정되는 무기명 투표가 아니고 견해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식견이 어떠한지가 핵심”이라며 “위작이란 견해를 피력했지만, 이번 발표 결과를 보면 사실상 다수결인 셈이 됐다”고 했다.



검찰은 앞서 9인의 감정위원을 섭외해 안목 감정을 진행한 결과 대체로 진작이란 견해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과학감정을 거쳐 위작으로 내린 결론을 배척하고, 미인도에 대해 진작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근거의 한 축이 됐다.

검찰 측은 감정위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정위원들이 감정에 부담을 많이 느꼈다”며 “감정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했다는 것도 노출되길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감정위원들 가운데 감정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주장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기명 감정으로 일반인은 물론 유족 모두 감정위원이 어떤 전문적 역량을 지닌 인물인지, 이번 사안과 이해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미술계에는 감정 위원의 역량과 이해관계의 유무는 감정의 공신력 그 자체와도 관계돼 있다고 본다.


검찰의 감정위원 실명 비공개 방침은 국내 근현대 미술품 감정을 주도하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의 감정서 발행 관행과 궤를 같이한다. 실명 감정의 원칙을 지키는 프랑스 등 해외 미술 선진국과 다른 한국 미술계의 독특한 관행이다.
감평원의 ‘무기명 감정서’ 발행 관행은 미술품 유통시장 투명화 의지를 천명하고 관련법 제정에 나선 문화체육관광부도 문제시한 사안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후 표준 감정서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며 감정서와 관련한 문제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림미술관 사외 이사인 홍경한 평론가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평가자도 소신껏 밝혀야 하는 게 아니냐”라면서 “감정위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프랑스 감정단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검찰 수사 결과에 반박 입장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인도 위작 시비는 종결된 것이 아닌 여전히 미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과학적 분석에 전적으로 의거한 그간의 연구결과를 한국의 검찰이 완전히 무시하고 논리적 근거도 없이 깎아내린 것에 심히 우려를 표한다”며 “검찰은 결국 과학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술계 전문가 B씨는 검찰의 미인도 수사 과정에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는지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요청에 대해 거절하면서 “감정위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각 감정위원이 어떤 견해를 피력했는지는 무기명으로라도 전체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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