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더 좋아하는 엄마…"벌레가 나타났어요"

머니투데이 박은수 기자 2016.1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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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꿈꾸는 서재] <24> '공주의 방 & 왕자의 성'

벌레를 더 좋아하는 엄마…"벌레가 나타났어요"


"주사, 파, 콩, 시금치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됐다."
이게 무슨 뜻이지? 아이와 함께 책을 읽던 중 나온 주인공 여자아이의 독백. 갸우뚱도 잠시. 3초 만에 의문은 감탄이 됐습니다.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작가의 센스에 무릎을 탁 칩니다. 대부분 아이들은 주사, 파, 콩, 시금치를 싫어하니 분명 아이에게 오늘은 그닥 기분 좋은 날이 아닐 겁니다.

'공주의 방 & 왕자의 성'에는 그밖에도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먹는다'는 등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기발한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또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인 '벌레'가 무엇인지 유추해나가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출근 준비를 끝낸 아빠가 침대에 누워있는 공주님 이마에 뽀뽀를 하고 엄마는 빈 우유잔을 싱크대에 내려놓습니다. 잠자는 척 하는 아이는 눈을 뜨지 않아도 이 모든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제도 똑같이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달콤한 행복도 잠시. 아이의 아침을 깨운 건 다름 아닌 온 방안을 주인처럼 기어다니는 '벌레' 때문입니다.

벌레를 더 좋아하는 엄마…"벌레가 나타났어요"
아이가 너무 싫어하는 벌레는 머리에 더듬이가 달렸고 무당벌레를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큽니다. 힘도 더 세고요. 그런데 엄마는 왜 아이보다 벌레를 더 좋아할까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엄마가 벌레를 좋아한다고? 이해불가입니다.)



아이가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건 바로 벌레가 코를 깨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꿈속에서 왕자님을 만나고 있던 아이는 코를 물려 아파서 울고, 아픈 이유가 벌레 때문이라 울고, 왕자님과 결혼할 수 없게 돼버려서 울었습니다. (모기인가? 우리 아이도 지난 여름에 모기에 물려 코끝이 벌겋게 부어올랐거든요.)

화들짝 잠에서 깨 엉엉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는 "괜찮아"라며 토닥여줍니다. 엄마 품에서 스르륵 다시 잠이 든 아이는 엄마에게 혼나고 있는 벌레를 봅니다. "누나를 아프게 하면 어떡하니? 또 그러면 맴매할 줄 알아!" (아하! 벌레가 동생이었구나.)

그런데 아이는 왜 동생을 벌레에 비유했을까요? 엄마가 사다준 벌레 캐릭터 옷을 입고 기어다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벌레 같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동생이란 존재가 그저 자기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대상이어서가 아닐까요? 장난감도 양보해야 하고, 뭐든지 나눠야 하며, 무엇보다 엄마아빠의 사랑을 빼앗아 가니까요. 하지만 아이는 왕자님과의 결혼식에 동생을 초대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참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우리 아이들에게 공주와 왕자, 괴물과 벌레가 나와 펼쳐지는 현실과 환상의 이야기는 또다른 상상의 자극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공주의 방 & 왕자의 성'=이도윤 지음. 도도원 펴냄. 40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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