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인종차별에 가려진 '연령차별'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6.12.1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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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당신은 너무 늙지도 너무 늦지도 않았다"

성차별·인종차별에 가려진 '연령차별'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일러주듯, 늙음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부정적이다. 나이 들어 얻는 장점보다 나이 듦 자체가 지닌 생물학적 단점은 그간 보이지 않은 차별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연령에 대해선 ‘차별’이라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차별 등 각종 차별에 대해 사람들은 수많은 사회적 논쟁을 통해 변화를 모색했지만, 연령차별이라는 얘기를 듣고 ‘없어져야 할’ 차별이라며 분노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의 저자는 연령차별(에이지즘, ageism)의 보이지 않는 이런 폭력성에 주목한다. 모든 사람이 평생 한 번은 당하고 절대 피할 수 없는 차별이 바로 연령차별이기 때문이다. 연령차별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집단의 연령을 추측하고 그 연령에 근거해 그에게 다른 느낌을 받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젊은이들을 향해 “너무 어려서 그런 일을 시키기가…”라든가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하는 식으로 발언하거나 늙은이의 규정을 ‘힘없이 비틀거리는 독거노인’으로 획일화하는 것이 모두 연령차별의 사례들이다.



연령차별은 권력을 손에 쥔 집단이 자기들보다 훨씬 어리거나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을 억압하거나 착취하거나 침묵시키거나 단순히 무시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할 때 발생한다. 차별은 주로 젊은 사람보다 노인에게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아직 머리카락이 검고 진보적인 성향으로 ‘젊다’고 여긴 저자 역시 늙어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15년을 함께 일한 하얀 머리에 보수적인 동료와 동갑이라는 사실에 분개했던 그는 8년을 소비한 끝에 자신의 생각이 거만하고 옹졸하고 바보 같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나이 든 뇌가 지닌 정서적 성숙과 변화의 적응력 향상이 행복감과 연결된다는 것은 나이 들지 않고선 얻기 힘든 선물이었던 것. 저자는 노년학자 칼 필레머의 말을 빌려, “젊은 사람들은 행복이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젊음은 긍정, 노년은 부정 이미지로 덧씌워지면서 안티에이징 산업도 덩달아 성장했다. 젊음은 좋은 것이고, 노년은 그 반대라는 만들어진 이미지에 속아 불필요한 돈을 지불하는 게 정당한 것인지 저자는 되묻는다.

나이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을 보내는 연령차별적 시각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노인’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맴도는 ‘거동이 불편한’ 정형화한 이미지도 선입견일 뿐이고, 어떤 문화권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금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조사를 통해 밝혀낸 충격적인 현실은 80, 90대에 들어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고령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게다가 이들이 미국 사회의 거대한 집단을 대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지구상에 나이가 줄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경멸의 뜻이 담긴 ‘늙어가는’(aging)이라는 표현도 사용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다만 나이가 많고 적을 뿐이다. ‘에이지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령차별은 타인에 대한 혐오로 시작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바뀌기 마련이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한마디가 연령차별적 시선의 무게를 조금 덜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너무 늙지도 너무 늦지도 않았다.”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애슈턴 애플화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시공사 펴냄. 404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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