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열린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공연. 기존 작품과 조명, 의상, 무대 장치 등에서 180도 바뀐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내놓은 세계 진출작이다. /사진제공=오디컴퍼니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의 시작을 알린 지난 7일 대구 공연은 입체적 배경에 입체적 주제와 인물로, 식상해 질 수 있는 대화 중심의 평면 드라마를 3차원적으로 끌어올렸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문학과 철학의 영역으로 집중될 뻔한 답답한 구조를 인물의 연기와 무대 장치의 영리한 전략으로 상쇄했다고 할까.
이를 위해 각색한 흔적은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우선 기존의 ‘지킬앤하이드’가 한국적 정서를 고려해 신파적 감성을 동원해 관객과 ‘감정의 동일화’ 작업에 충실했다면, 새 버전은 좀 더 논리를 부각해 ‘이성의 객관화’ 쪽에 무게를 뒀다.
노래를 통하거나 대화를 통하거나 표현 방식은 늘 직선적이다. 은유적이고 두루뭉술 포장했던 기존의 작품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뮤지컬의 제작사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도 앞서 가진 간담회에서 밝혔듯, 대본·의상·조명 등 모든 부분이 바뀌었다. 신 대표는 “영어권 국가를 목표로 만들다 보니, 캐릭터의 심적 표현보다 가사를 더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신파라는 감정선의 고리를 이 공연에선 만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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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부르는 노래 한가락은 어떤 역동적 퍼포먼스 못지 않게 긴장감을 유지했다. 여기에 매번 변화를 앞세운 장소와 배경 자체가 대사의 표현력만큼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지킬 박사의 실험실 무대는 디테일의 승리라고 불릴 만하다. 천고를 알 수 없는 최고의 높이까지 채워진 1800개의 병엔 모든 조명을 투사해 집중력을 극대화했다.
지킬과 하이드 역을 맡은 브래들리 딘은 이 이름이 생소한 한국 팬에게 탄성과 갈채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시작부터 탄탄한 품새와 안정된 가창으로 신뢰를 얻은 그는 2막이 시작되면서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지킬의 선한 모습, 하이드의 숨겨진 야성의 울부짖음을 초 단위로 오가며 보는 이의 심장을 쥐락펴락했다. ‘지금 이 순간’은 오로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곡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날 공연을 찾은 한 30대 여성 관객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본 것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무대 장치와 배우의 열혈 연기에 감동 받았다”며 “기존 작품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는 내년 3월 서울 공연에 이어 여름쯤 중국에서 공연한 뒤 미국 등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신춘수 대표는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부분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수준을 한 단계 높이려고 했다”면서 “좋은 작품을 내놓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