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회장 연임? 지금 KT에게 필요한 건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6.12.09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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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낙하산 인사는 받지 않겠습니다.” 2014년 1월 KT 구원투수로 합류한 황창규 회장의 취임 일성이다. 그의 공언은 1년여 만에 공수표가 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KT는 청와대 요청을 받고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 지인과 최순실씨 측근을 광고 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요직에 채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을 통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광고 제작사에 KT 광고물량을 몰아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황창규 회장은 삼성 반도체 사업의 세계 일류화를 일궈냈던 신화적 전문 경영인이다. 뚜렷한 정치색도 없다. 그가 KT 회장으로 낙점됐을 당시 이렇다 할 논란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임직원들의 신망도 두텁다. KT는 지난 2·3분기 연속 4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나락’으로 추락했던 회사 실적을 과거 전성기 때로 돌려놨다. 전임 회장 시절 영입된 낙하산 인사들도 대부분 돌려보냈다. 때문에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에 KT가 휘말린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은 내부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 원칙론자였던 황 회장이 어쩌다 한점 오점을 남겼을까.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VIP(대통령)의 뜻’이라며 황창규 KT 회장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인사청탁을 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은 물론 ‘상무보’급 인사권까지도 청와대의 간섭을 받았던 셈이다. 2002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권력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는 KT 지배구조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KT와 비슷한 시점 민영화된 포스코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4년 차은택씨가 포스코 광고계열사 ‘포레카’를 강탈하려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된 정황까지 드러난 걸 보면, 이들 회사를 정권의 전리품 쯤으로 여기는 현 정권의 인식이 쉽게 짐작된다.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10.47%)이다. 사실상 ‘주인없는 회사’다.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정권 코드에 맞는 인물로 교체되고 임기 내내 정치권의 인사청탁도 끊이지 않았다. 2007년 연임에 성공했던 남중수 KT 전 사장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퇴진 압박에 시달리다 검찰수사로 불명예 퇴진한 데 이어 직전 CEO였던 이석채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5년 전 전임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황창규 회장 연임? 지금 KT에게 필요한 건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황창규 회장과 KT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일정상 늦어도 내년 1월까지 황 회장 연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황 회장의 연임 결정보다 현재 더 시급한 사안은 회사 지배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KT는 외국인 지분율만 50%에 육박하는 민영기업이다. 그럼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CEO 리스크 탓에 3년 이상 중장기 미래 비전조차 짤 수 없다. 철만 되면 사업과 조직 체계가 뒤바뀌는 기업에 미래 성장 가치를 바라는 건 무리다.



KT가 ‘진짜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CEO와 주요 임원 자리를 정권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정치적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 ‘거수기’에 불과했던 KT 이사회도 정상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오너 기업’으로 소유구조를 바꾸거나 사외이사와 감사시스템 권한 강화 등 특단의 쇄신안이 마련돼야 한다. 극도의 정국 혼란 속 특정 정치세력이 개입하기 어려운 이때가 KT의 미래를 바꿀 절호의 찬스다. 황 회장이 마침표를 찍어야 할 ‘통신판 황(黃)의 법칙’ 완결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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