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 朴 퇴진, '4월말과 그 이전'…하늘·땅 차이

머니투데이 김준형 산업1부장 겸 부국장 2016.12.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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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40雜s] 朴 퇴진, '4월말과 그 이전'…하늘·땅 차이


말 그대로 '박근혜 블랙홀'이다.
산업분야를 맡고 있다 보니 기업쪽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데, 대화는 내년 경기, 성장 동력, 글로벌 환경...으로 시작됐다가 이내 '탄핵'과 '퇴진'으로 돌아간다.
대통령 없어서 기업들이 일 못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 기업 가계가 온통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보통때 하고 같을 수 없다. '불확실성'과 '분노'는 법인이건 개인이건 결정을 미루게 하고, 돈을 쓰지 않게 만든다. 일할 맛도 나지 않게 만든다. 경제에 치명적이다.

29일 대통령 3차 담화, 그리고 이에 대한 화답으로 새누리당이 제시한 '4월말 퇴진'이면 이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왜 국민들은 '4월말 퇴진'에 감동하지 않고, 대통령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으며, 탄핵을 주저한 야당이 매를 맞는 것일까.



기업을 경영하는 한 친구는 술자리에서 "대통령이 저지른 죄는 '들킨 죄, 속인 죄, 버틴 죄' 세가지"라고 했다. 제일 골치 아픈 죄는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죄이다. 지금 박대통령은 들키고 속인 데 이어 버티기에 들어갔다.

탄핵 할 테면 해봐라던 대통령이, (노태우의 6.29선언을 떠올리게 하는)'원로들의 고언' 형식을 만들어가며 4월까지 버티기를 해야 할까.



탄핵으로 물러나는 것과 하야의 1차적인 차이는 '대통령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연금 의료·교통·통신비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이다. 평생 남이 돌봐줘서 살아온 대통령으로선 적지 않은 변수일 수도 있다.
지켜야 할 '명예'가 없는 전직 대통령들에게 지금까지 쓴 돈도 아까운데, 여기에 한 명 더 추가된다는 게 국민들로선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건 부차적이다. 그간 국민들이 뜯겨온 천문학적인 돈에 비하면 (정윤회 말마따나)'연약한 여자' 하나 보호해주는 비용은 껌값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4월 퇴진'과 '그 이전'의 차이는, 특별검사의 수사다.
특별검사의 활동기간은 준비기간 20일, 활동기간 70일 등 90일이다. 2월말이면 끝난다. 대통령이 30일 연장을 승인한다면 3월말이다. '4월말'은 대통령 신분으로서 특별검사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 여유있게 버틸수 있는 시간이다.
헌법상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 한 대통령은 이 기간 동안 검찰을 포함한 국가기관에 대한 인사와 행정을 집행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일부 야권은 '2선 후퇴(혹은 퇴진)'를 전제로 내걸고 있지만, '2선'은 대통령 마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흐릿한 선이다. 피고인이 '대통령직'을 유지한 상황에서 특검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대통령은 얼마든지 특검 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특검 활동 종료일인 4월말 이전에 '하야'한다면 체포는 물론 구속 기소까지도 가능해진다. '수의'를 입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하야 하지 않고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돼 직무가 정지된다면 대통령직은 유지되지만, 노무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인사나 행정 등 통상적 권한을 행사하는 건 불가능해지고, 정치적으로도 식물이 된다. 피의자가 대통령직을 4월까지 유지하는 것과 특검 수사 영역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생긴다.
물론 검찰이 시한부 기소중지를 해둔 상태라 4월말 퇴임 이후에도 기소는 가능하지만 특검수사는 추가로 진행할 수 없다.
마지막 보루인 특검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단군 이래 유례없는 막장 권력형 비리에 대한 진상규명이나 관련자 처벌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면죄부'는 탄핵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고, 특검까지 해도 제대로 단죄를 하지 못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둘째로, 4월까지면 박근혜 정부가 밀어 붙였던 정책을 마무리할 시간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교육부가 1일 국정교과서 강행 의지를 천명하고 나선 것은 그 시작이다. 대북정책, 사드, 외교, 경제 정책 등 박근혜 정부가 논란 속에 추진해온 정책들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처럼 서둘러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박대통령과 정부로서는 말 그대로 '질서 있는 퇴진'이다.
폭발하는 민심은 (비선실세가 개입돼 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진) 이해하기 힘들었던 박근혜 정부의 독단과 밀어붙이기식 정책에도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적 논란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4% 지지'와는 다르게 전선이 복잡하다. 이해 집단 간의 밀고 당기기,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 부각되면 국민들의 화살은 대통령이라는 과녁을 벗어나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정권재창출 기반을 마련할 여유를 찾게 된다. 4%의 국민들만이 박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지만, 과거 박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은 '박근혜'가 아닌 다른 대안이 등장할 경우 미련없이 야당이나 비박들을 버릴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될지, 유승민, 남경필, 오세훈 등 '잠룡'들이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보수의 결집'만 가능하다면 누가 됐든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박대통령은 대구 서문시장 방문에 이어, 이른바 '비박'들과 접촉에 나서는 등 벌써부터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할 태세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거대한 권력집단을 유지해온 세력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다시 정권을 창출하면 대통령은 비록 임기를 채우진 못했지만, 자신을 희생해 혼란 바로잡았다는 '명예'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극심한 행오버(숙취)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뭘했지? "이러려고 매주 거리로 나왔나" 하는 무력감과 패배감은 역사를 다시 후퇴시킬 것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
기업들에게 돈을 뜯어내고, 납품 특혜를 알선하고, 정부와 민간기업 인사에 부당하게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으면서도 이 모두가 '선의'였다고 주장한다. 이를 알아주지 못하는 국민에 대한 배신감이 3차 담화에까지 담겨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떤 행위를 하는게 '범죄'이고, 그게 어떻게 처벌받는지를 단단히 해두지 않으면 권력의 갈취는 지속될 것이다. 대기업들은 두려움 속에서 권력의 사금고가 되거나, 반자발적으로 권력을 활용하는 처세술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간 어쩌면 처절한 복수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무서운 조직의 특징은, 살아남은 조직원들이 반드시 보복한다는 것이다.

"당신, 그때 검찰에서 이렇게 불었지?" "우리가 힘 빠지니까 안면 바꾸고. 피해자랍시고 여기저기 이야기 흘리고 다녔지?"
그땐 기업들에게 날아드는 청구서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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