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돈' 말고는 준비하는 게 없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6.12.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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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162>돈 중심의 은퇴설계…은퇴 이후 삶이 불행해지는 이유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은퇴설계 어떻게 하세요?”

주변 사람에게 은퇴준비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퇴직 후 얼마의 연금을 받고 얼마큼 예금이 필요하고 부동산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등등 온통 ‘돈’ 얘기만 늘어놓는다.

은퇴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선 은퇴 후 직업과 가족·친구관계, 종교, 취미생활 등 다른 중요한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설계와 준비가 필요한데도 우리사회는 지금 오로지 은퇴자금에만 지나치게 쏠려 있다.



재테크 블로그 ‘가치투자쟁이 Story’에 소개된 은퇴를 앞둔 나이 예순의 현직 교사 부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 교사 부부는 누가 봐도 부러울 만큼 완벽한 은퇴준비를 했다고 자랑했다.

“부부 교원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치면 월 900만원 가까이 되고. 자식들은 모두 직장 다니고 결혼도 다 해서 따로 돈 들어갈 일도 없고. 은퇴 후 편안히 즐기기만 하면 돼.”



이 쯤되면 '돈'에 관한 한 거의 완벽한 은퇴준비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이렇게 완벽한 은퇴준비를 찾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 교사 부부에게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라고 지극히 단순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이들의 말문은 그만 막혀 버렸다.

"쉬어야지. 그리고...??"

교사 부부에게 완벽한 은퇴설계란 게 '월 900만원의 연금'과 '쉬겠다'는 계획이 전부였다.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이들의 은퇴설계 안에는 없었다.


이 블로그에 소개된 예순을 갓 넘긴 부자는 더 암울하다. 부부관계는 파탄일보 직전인데다 자녀들은 이른 상속논쟁으로 서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었다. 그 와중에 가업승계를 어떻게 진행할지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소비하며 즐기는 삶을 살 풍요로움은 있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즐거움이나 의미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돈을 보고 모여들었지만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그저 계절마다 한 두 차례 골프가방을 메고 외국여행을 다니는 것을 빼면 지극히 지루한 은퇴 후 일상을 보냈다. 자신이 소유한 건물 지하의 작은 사무실에서 담배연기 자욱한 가운데 또래의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는 게 주된 생활이었다.

이 부자는 은퇴자금이 흘러넘치지만 그 외에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은퇴 이후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하고 지낼지 종합적인 계획이 없었다. 가족과 소통하고 관계를 더 깊이 맺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이 부자는 우리사회에 만연된 돈 중심의 은퇴설계가 낳은 불행한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많이 저축하고(save more), 많이 투자하고(invest more), 많이 보유하라(have more)." "조금이라도 빨리 준비하면 복리효과 때문에 훨씬 많은 은퇴자금을 모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은퇴설계 강의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훌륭한 지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은 20~30대 이른 나이부터 비교적 큰 금액으로 20~30년짜리 은퇴용 연금을 붓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은퇴자금은 은퇴설계의 전부가 아니다. 은퇴자금은 은퇴 후의 삶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돈 때문에 더 불행한 은퇴 이후를 보낼 수 있다.

공인재무설계사(CFP) 토니 샌더콕(Tony Sandercock)은 '돈 중심의 은퇴설계'가 불행한 은퇴생활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은퇴자금 이외에 다른 영역도 종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소개한 (행복한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돈' 이외에 필요한 다섯가지 중요한 영역은 다음과 같다. 혹시 은퇴설계를 하면서 돈 이외에는 따로 준비하는 게 하나도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아래 영역에 대해서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보자. 그래야만 정말로 '완벽한' 은퇴설계가 될 수 있다.

1.건강
건강이 돈 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특히 은퇴자들에게 해당된다. 건강이 은퇴 이후의 삶의 만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퇴 이후 얼마나 건강할지 알 수는 없어도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은퇴 이후 어떻게 건강한 몸을 유지할 것인지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자.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다.

2.정체성(은퇴 후 직업)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 대개 직업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직업은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일을 통해서 성취감, 자존심, 기여, 성공 등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일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그런데 은퇴와 동시에 이런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단절되면 은퇴자들은 공허함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은퇴자금이 아무리 흘러 넘쳐도 은퇴 이후 무엇을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활기 있는 은퇴 이후의 삶을 살기 어렵다.

3.친구
은퇴하면서 놓치는 게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사회적인 관계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매일 직장동료나 친구들을 만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토론도 하고 농담도 나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두뇌활동도 활발하게 만든다. 여러 연구논문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는 인간의 수명을 50%까지 늘이는 효과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은퇴 이후 사회적 관계를 모두 끊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으면 수명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은퇴 이후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친구도 계속 만나야 하고 사회적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돈이 많은 은퇴자라고 좋은 친구와 친밀한 사회적 관계가 그냥 유지되지 않는다.

4.삶의 목적
은퇴자금이 충분하다고 은퇴 이후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은퇴자금은 은퇴 이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한 삶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사회를 위한 봉사와 기부,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은퇴자금이다. 따라서 은퇴자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면 목적 없는 막막한 은퇴 이후의 삶을 살게 된다. 그저 "쉬어야지..."라며 소일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5.부자지수(the Rich Ratio)
부자지수란 가진 것(Have)을 필요한 것(Need)으로 나눈 수치이다. 부자지수는 1보다 크면 좋다. 예를 들어,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데 50만원이 필요하다면 부자지수는 2(=100만원/50만원)이다. 반대로 한달에 1000만원을 버는데 2000만원이 필요하다면 부자지수는 0.5(1000만원/2000만원)이다. 은퇴자들은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자지수는 1 이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은퇴자들에게 부자지수는 특히 중요한데, 이는 은퇴설계에서 '얼마의 은퇴자금을 모아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매달 얼마씩 지출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은퇴자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은퇴 이후 무분별한 지출을 하게 되면 부자지수는 금방 1 이하로 떨어져 경제적으로 힘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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