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가이드라인'으로 제2의 하나銀·미래에셋 나올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실 2016.11.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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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칼럼]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지난 수년 간 핀테크 산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P2P(개인간거래) 대출입니다. 지난 10월 말 현재 P2P금융협회에 등록된 회원사 수가 29개, 대출잔액은 3394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10배 넘게 급성장했습니다. 덩치로 보면 웬만한 중형 저축은행 한 개 규모에 버금가지요.

금융당국도 빠르게 활성화되는 P2P 금융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11월 초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법인이나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 개인투자자의 경우 투자한도가 P2P업체당 건당 500만원, 연간 1000만원(누적)으로 제한됩니다.

그리고 P2P업체의 정보 공시 의무가 강화됐습니다. P2P업체는 누적 대출액과 대출잔액, 연체율 등을 매월 공시해야 하고, 차입자의 신용도와 자산부채 현황, 소득이나 직장정보, 연체기록, 대출목적과 상환계획 등 투자정보도 공시해야 합니다.



P2P업체가 투자금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예치하도록 하는 등의 기술적 보호 장치도 한층 강화됐습니다. P2P업체가 투자금을 인출해 유용하거나 파산할 경우에 대비한 사전 조치입니다.

또한 P2P업체가 자신이 중개하는 P2P대출에 직접 투자자로 참여할 수 없도록 차단했습니다. 이는 P2P업체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으기 전에 자기자본으로 대출을 먼저 실행하고 나중에 투자자에게서 모은 자금으로 실행한 대출금을 메우는 '선대출' 방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주 목적은 투자자 보호로 보입니다. 그러나 P2P대출업계는 투자자 1인당 투자한도와 자기자본 투자 금지 조항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수년 째 이어지고 있는 초저금리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아쉬운 이자수익자들이 P2P업체가 제시하는 연10% 내외의 투자 상품에 솔깃할 가능성이 높고, 특히 P2P업체와 차입자들이 선의든 고의든 채무를 불이행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입힐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P2P 대출 가이드라인'에 반영된 금융당국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임대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창업 준비자라든지, 20가구 미만의 소규모 주택을 건설하는 건설업자들, 그리고 법정상한선의 고리대금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기존 제도권 금융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P2P대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고려한다면, 지금 막 싹을 트이고 있는 신생산업에 대해 규제안 보다는 육성책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금번에 발표된 ‘P2P 대출 가이드라인’ 중 P2P업체가 P2P대출의 차입자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 방침은 긍정적이지만,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을 막는 것은 P2P업체의 초기 정착에 커다란 어려움을 줄 게 틀림이 없습니다.

금융업자 역시 사업가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사업 초기에는 본인의 자금 또는 본인을 신뢰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구한 돈을 바탕으로 정착을 할 수 밖에 없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야 다수 대중들이나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P2P대출의 특성상 P2P업체 자신이 일정 부분 투자하는 것은 일면식도 없는 온라인상의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P2P업체는 대출 회수 구조를 세울 때 자신의 투자금액을 후순위로 배치하는 상품 구조 등을 보여준다면 투자자들로부터 더 큰 신뢰를 확보할 수도 있을 겁니다.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의 조그만 지하 사무실에서 소규모 어음매매로 시작한 골드만삭스의 역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리고 KEB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이 1972년 '8.3사채동결조치'를 배경으로 출범한 '한국투자금융'이 그 모태이고, 최근 대우증권을 삼킨 미래에셋이 불과 30 년 전에는 작은 투자자문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너무 빡빡한 규제가 겨우 움트는 P2P대출의 싹을 여지없이 잘라버리고 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이번 가이드라인 때문에 P2P대출이 제2의 하나은행이나 미래에셋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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