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크 배경엔 지방·노동자 집중전략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6.11.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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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변, 트럼프 당선]격전지 집중 맞춤전략 주효… 女心 이변, 숨은 지지층도 배경

미국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트럼프의 막말엔 조롱 섞인 비난이 쏟아졌다. 공화당도 트럼프가 승리한 경선 결과를 놓고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선은 포기하고 의회 다수당 지위를 지키는 데 주력하자는 게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주류의 공공연한 속내였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e메일 스캔들 재조사 파문으로 한때 트럼프의 역전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대선을 이틀 앞두고 수사를 무혐의로 종결했다. 클린턴이 다시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렸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클린턴에게 축포를 쏠 기세로 선거날까지 랠리를 펼쳤다.



초기 개표 전망에서도 클린턴의 우세가 예상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의 반격이 시작됐다. 급기야 그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주요 격전지를 하나둘 장악해나갔다. 그 사이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하며 최근 안도랠리가 한창이던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가 지방과 노동자층의 지지를 확보한 게 승리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클린턴은 펜실베이니아와 필라델피아 같은 민주당 텃밭에서 오히려 지난 대선에 비해 수만표를 잃었다. 민주당은 히스패닉이나 이슬람 등 소수계층에 대한 트럼프의 막말로 반사이익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그쳤다. 트럼프는 오히려 4년 전 대선에서 공화당 주자로 나선 밋 롬니보다 히스패닉 유권자에게서 약 2%포인트, 아시아계에서는 3%포인트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분석됐다.



WSJ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백인 유권자 비율이 2~3%포인트 낮아졌지만 소수계층의 표로 이를 상쇄했다고 지적했다.

격전지에 집중한 맞춤 전략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한 예로 플로리다는 카리브해 연안국에서 온 히스패닉과 은퇴한 백인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보수적인 백인은 트럼프를, 히스패닉은 클린턴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해 이번 선거에서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혔다. 플로리다는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엘 고어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접전을 펼친 곳이다. 연방대법원 재검표까지 간 끝에 고어는 이곳에서 단 537표 차이로 패배했다. 2008년, 2012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를 손에 넣었지만 간발의 차이에 불과했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플로리다에서 승리한 게 치밀한 선거 전략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플로리다 선거본부 책임자인 수지 와일스는 지난달 초 허리케인 매슈가 플로리다 일부 지역을 강타했을 때 터전을 잃은 유권자들을 보고 부재자 투표의 중요성을 간파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곧바로 플로리다에 대한 선거 자금을 대거 늘렸다. 이런 관심 덕분에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의 투표율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미국 제조업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오하이오도 노동자 계층에 집중한 트럼프가 공을 들인 곳이다. 오하이오는 인종 구성이 전국 평균에 가까워 '미국의 축소판'이라고 불린다. 지난 50년간 오하이오에서 지고 대선에서 승리한 사례가 없었다.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도 이변의 배경이 됐다. 미국 양당 역사 최초의 여성 대권주자로 나선 클린턴이 얻은 여성표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출구조사 결과 클린턴과 트럼프는 여성 유권자의 표를 각각 54%, 40%씩 가져갔고 백인 여성 가운데는 트럼프의 득표율이 51%로 43%에 그친 클린턴을 압도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드러나지 않은 트럼프 지지층에 주목했다. 트럼프가 갖은 막말과 스캔들로 비난을 받는 통에 드러내놓고 그를 지지하지 못한 '숨은 트럼프 지지자'(stealth Trump supporters)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8일 트럼프의 우세로 진행되는 개표 과정을 보며 쓴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또 "미국이 실패한 국가, 사회냐"고 자문한 뒤 "정말 그럴지 모른다"고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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