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내를 배회하는 청년들. 시내 한복판에 모닥불을 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쿠르드족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분리독립운동 때문이다. 1920년 열강제국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약속했으나 곧 파기하였는데, 그 이후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흔히 무장독립운동 세력을 ‘쿠르드 반군’이라고 부르는데, 무장투쟁에 주력하고 전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과격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이 친구들은 왜 이러고 다녀요?”
청년백수들이 부유하는 도시. 인구비율로 볼 때 이 도시는 특이할 정도로 젊다. 45세 이하가 전체의 70%나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의 농촌마을 사람들. 맨 오른쪽이 샤키르./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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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주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은 쿠르드족이고 투르크족이 약 15%를 차지한다. 그 15%의 투르크족이 관료‧교사‧은행원 등 소위 ‘고급 직종’을 차지하면서 상류사회를 독점하고 있다. 이곳의 투르크족은 쿠르드족을 ‘검둥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하기도 한다. 자신의 조상들이 누대로 살아온 땅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사람들. 오랜 투쟁의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 사람의 생업은 밀수’라는 말도 있다. 말 그대로 헤로인‧무기‧기름(석유) 밀수가 판치는 곳이 반이다. 기름 밀수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과정도 간단하다. 먼저 트럭의 연료탱크를 최대한 크게 개조한다. 국경을 넘어 기름이 싼 이라크로 간다. 탱크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돌아와서 싸게 판다. 제재는 없을까? 제재는커녕 교통경찰도 밀수 기름을 파는 곳에서 주유를 한단다. 또 이 나라에서는 개인도 총기 소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기 반입도 빈번하다.
내가 본 반이라는 도시는 마치 희망이 없는 도시 같았다. 실업자, 밀수, 차별이라는 말만 떠돌아다니는 도시에서 무엇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목축을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었다. 내가 만난 농가의 주인은 샤키르라는 이름의 50대 초반 남자였다. 아무 약속도 없이 찾아갔는데도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찾아온 듯 반겼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온 손님 접대를 위해 온 가족이 나섰다.
가장은 축사니 집안이니 이곳저곳 안내하며 자신들이 사는 모습을 설명하기 바빴고 그의 아내는 빵을 굽고 차를 끓였다. 아이들은 낯선 손님이 신기한 듯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마치 1970년대 쯤 우리 농촌 마을을 찾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정답고 푸근했다. 삶의 질도 생각보다 열악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호전적이고 잔인하다고 소문난 쿠르드 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그곳에서 본 것은 평화였다. 같은 종족의 사는 모습이 이렇게 천양지차라니. 음울해 보이던 도시와의 극단적 대비였다.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이기 마련이었다. 선입관에 매몰되거나 어느 한쪽 측면만을 보고 단정할 게 아니라는 진리도 새삼 확인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 역시 무엇이든 제대로 알려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