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내가 만난 쿠르드족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6.11.1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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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제대로 알려면 그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라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반 시내를 배회하는 청년들. 시내 한복판에 모닥불을 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반 시내를 배회하는 청년들. 시내 한복판에 모닥불을 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터키·이라크·이란에 걸친 쿠르디스탄 지역에 약 4000년 전부터 거주하는 종족’ 쿠르드족을 이르는 말이다. 쿠르디스탄의 전체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작은 8만km² 정도. 쿠르드 족은 산악과 평야에 골고루 사는데, 산악지대의 주민은 재빠르고 사나운 반(半)유목민이며, 평야의 주민은 농경에 종사한다. 대부분이 이슬람교 수니파다. 중세 때 아라비아의 통치를 받은 이후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쿠르디스탄은 터키·이란·이라크 등 인접 4개국에 분할됐다.

쿠르드족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분리독립운동 때문이다. 1920년 열강제국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약속했으나 곧 파기하였는데, 그 이후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흔히 무장독립운동 세력을 ‘쿠르드 반군’이라고 부르는데, 무장투쟁에 주력하고 전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과격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쿠르드 족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터키의 동부도시 반에서였다. 반은 반 주(州)의 주도(州都)인데 생각보다 낙후된 도시였다. 반 주 전체에는 약 100만 명, 주도인 반에는 30만 명이 산다. 맨 먼저 눈에 띈 건 도심을 물고기 떼처럼 몰려다니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언뜻 봐도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현지사람에게 물었다.

“이 친구들은 왜 이러고 다녀요?”



“할 일이 없어서 그래요. 대부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이거든요. 특별히 시간 때울 곳도 없고 돈도 없으니 그냥 배회하는 거지요.”

청년백수들이 부유하는 도시. 인구비율로 볼 때 이 도시는 특이할 정도로 젊다. 45세 이하가 전체의 70%나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의 농촌마을 사람들. 맨 오른쪽이 샤키르./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쿠르드족의 농촌마을 사람들. 맨 오른쪽이 샤키르./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반 주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은 쿠르드족이고 투르크족이 약 15%를 차지한다. 그 15%의 투르크족이 관료‧교사‧은행원 등 소위 ‘고급 직종’을 차지하면서 상류사회를 독점하고 있다. 이곳의 투르크족은 쿠르드족을 ‘검둥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하기도 한다. 자신의 조상들이 누대로 살아온 땅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사람들. 오랜 투쟁의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 사람의 생업은 밀수’라는 말도 있다. 말 그대로 헤로인‧무기‧기름(석유) 밀수가 판치는 곳이 반이다. 기름 밀수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과정도 간단하다. 먼저 트럭의 연료탱크를 최대한 크게 개조한다. 국경을 넘어 기름이 싼 이라크로 간다. 탱크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돌아와서 싸게 판다. 제재는 없을까? 제재는커녕 교통경찰도 밀수 기름을 파는 곳에서 주유를 한단다. 또 이 나라에서는 개인도 총기 소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기 반입도 빈번하다.

내가 본 반이라는 도시는 마치 희망이 없는 도시 같았다. 실업자, 밀수, 차별이라는 말만 떠돌아다니는 도시에서 무엇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목축을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었다. 내가 만난 농가의 주인은 샤키르라는 이름의 50대 초반 남자였다. 아무 약속도 없이 찾아갔는데도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찾아온 듯 반겼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온 손님 접대를 위해 온 가족이 나섰다.

가장은 축사니 집안이니 이곳저곳 안내하며 자신들이 사는 모습을 설명하기 바빴고 그의 아내는 빵을 굽고 차를 끓였다. 아이들은 낯선 손님이 신기한 듯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곳에 머무는 내내 마치 1970년대 쯤 우리 농촌 마을을 찾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정답고 푸근했다. 삶의 질도 생각보다 열악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호전적이고 잔인하다고 소문난 쿠르드 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그곳에서 본 것은 평화였다. 같은 종족의 사는 모습이 이렇게 천양지차라니. 음울해 보이던 도시와의 극단적 대비였다.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각양각색이기 마련이었다. 선입관에 매몰되거나 어느 한쪽 측면만을 보고 단정할 게 아니라는 진리도 새삼 확인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 역시 무엇이든 제대로 알려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봐야한다.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내가 만난 쿠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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