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어미 자궁에 네 발의 총알로 박혀 있을 손가락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6.10.2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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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박지웅 시인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시인의 집]어미 자궁에 네 발의 총알로 박혀 있을 손가락들


무심결에 그의 왼손을 잡았다. 무언가 허전했다. 잡은 왼손을 펴 그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네 손가락이 없었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시 그의 빈 왼손을 꼭 쥐고는 오른손으로 감쌌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손가락이 피었다”(‘인연人戀’)라는 짧은 시가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왔다.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직후 만난 박지웅 시인(1969~ ). 그를 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의 시라고 다를까. 지금까지 그의 오른손만 잡았던 것처럼 놓친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첫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와 두 번째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에 이어 세 번째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를 다시 읽어보았다. 헌데 자꾸 그의 빈 손이 눈앞을 가린다. 선입견이다. 어쩌겠는가, 먼저 짚고 넘어갈 수밖에.



눈밭에 찍힌 손바닥이 늑대 발자국이다
나는 발 빠르게 손을 감춘다

손가락이 없으면 주먹도 없다 주먹이 없으니 팔을 뻗을 이유가 없다 한 팔로 싸우고 한 팔로 울었다 한 팔로 사랑을 붙들었다



내가 바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두 주먹 꼭 쥐고 이별해보는 것, 해바라기 꽃마다 뺨을 재어보는 것, 손가락 걸고 연포 바다를 걷는 것, 꽃물 든 손톱을 아껴서 깎는 것, 철봉에 매달려 흔들리는 것, 배트맨을 외치며 정의로운 소년으로 자라는 것

내 손가락은 너무 맑아서 보이지 않는다, 내 손가락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여기서 시는 끝이다, 앞발을 쿡쿡 찍으며 늑대의 발로 썼다
아래는 일기의 한 대목이다


옷소매로 앞발을 감춘 백일 사진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태웠다 뒤뜰로 가 간장 단지를 열고 손을 넣어보았다 손가락이 떠다니고 있었다, 고추였다, 뼈 없는
어미 자궁에 네 발의 총알로 박혀 있을 손가락들, 어미의 검은 우주를 떠돌고 있을 나의 소행성들, 언젠가는 무화과나무 위를 지나갈 것이다
손가락들이 유성처럼,

- ‘늑대의 발을 가졌다’ 전문


전체가 한 편의 시이지만 5연을 기준으로 1~4연까지는 시, 6연은 일기란다. 어쩌다 왼손을 눈밭에 댔는데, 네 손가락이 없다. 본능적으로 왼손을 숨겼지만 눈밭에 찍힌 손자국까지 감출 순 없다. ‘늑대의 발’ 닮은 손을 보는 순간 그의 생각은 과거로 흘러간다. “어미 자궁에 네 발의 총알로 박혀 있는” 그의 손가락들은 “너무 맑아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조차 먹지 않는다.

손가락이 없으므로 주먹을 쥘 수도, “팔을 뻗을 이유”도 없다. 그래서 “한 팔로 싸우고 한 팔로 울”고, “한 팔로 사랑을 붙들었”을 것이다. 두 손이 온전하다면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늑대의 발’을 가진 그는 “정의로운 소년으로 자”랄 수 없었다. 빈 손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마음의 원형성을 잃기는 했지만 시를 통해서 복원해가고 있다. 참 아픈 시다.

이쯤 되면 부모에 대한 원망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에게 엄마는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이하 ‘우리 엄마’) 찾아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품은 “운명도 멈추어 기다리”고, “신도 손댈 수 없는 성지/ 파괴되지 않는 끄떡없는 별”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일 뿐이다. 엄마는 현재의 결핍을 감싸줄 수 없다.

따라서 그에게는 언제든 찾아가면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위안처가 필요하다. 그것은 “엄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엄마였다”나 “가지는 저마다 봄비 한 방울 챙겼다”(‘그 영혼에 봄을 인쇄한 적 있다’)에서 알 수 있듯, ‘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태아가 엄마의 뱃속 양수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이 안식처라면 나비나 물방울, 입술 등은 결핍으로 인한 삶의 원형성을 복원해주는 존재다. 그리고 시집 곳곳에서 나타나는 ‘옆’으로 눕는 행위와 ‘제3의 눈’ 같은 것은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본디 없는 듯 살아왔고, “옆을 잃은 지 오래되었”(‘옆이 없다’)지만 이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손가락 걸고 연포 바다를” 걸었으면 좋겠다.

◇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 박지웅 지음, 문예중앙. 156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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