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부동산 경기…되살아나는 '버블세븐'의 기억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6.10.2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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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목동 재건축 단지들 2006년 버블 때보다 더 빨리 올라

강남 아파트 단지/사진=머니투데이 DB강남 아파트 단지/사진=머니투데이 DB


전국 아파트 가격이 어느새 10년 전 부동산 활황기 때 수준을 회복했다. 전국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은 1000만원을 돌파했고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4000만원을 지나 5000만원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참여정부 중반인 지난 2006년 5월 15일 청와대는 부동산 가격 거품을 지적한다. 수도권 일부 지역의 가격 급등세가 전체 시장을 과열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청와대의 거품 경고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에 우리 부동산 시장이 극도로 취약해져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었다. 서둘러 거품을 빼지 않으면 단기 폭락이라는 시장 붕괴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녹아 있었다.



당시 정부는 가격 급등의 주범으로 서초·강남·송파구 등 강남3구와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7개 지역을 지목했다. 이른바 '버블세븐'이라는 단어로 더 익숙한 동네들이다.

당시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은 전례 없는 급등세를 보였다. 특히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 오름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자고 나면 오른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며칠새 수천만원이 뛰는 단지가 나왔고 2005년과 2006년, 2년 집값 상승률이 70%를 넘는 단지도 등장했다.



23일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1~2015년 중 연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06년이다. 당시 1년간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39.5%에 달한다.

강남구 도곡동 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도곡 렉슬' 59㎡는 2006년 2월 입주 당시 6억1000만원이던 가격이 그해 11월 8억9800만원(이상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기준)까지 치솟았다. 9개월 동안 2억8800만원이 뛴 것. 상승률은 무려 47%에 달한다. 한달에 3000만원 이상 가격이 올라야 가능한 수치다.

질주하는 부동산 경기…되살아나는 '버블세븐'의 기억
최근의 집값 움직임은 재건축 아파트들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2006~2007년과 닮아 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활기가 주택경기 전반을 견인하는 양상이다.


이미 서울 강남권 아파트들이 2006~2007년의 고점을 뛰어넘은 데 이어 목동 아파트 가격도 당시 수준에 육박했다. 모두 버블세븐으로 지목됐던 지역들이다.

10월 초 현재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은 4012만원으로 사상 처음 4000만원을 넘어섰다. 버블 경고가 나왔던 2006년의 이전 최고치 3.3㎡당 3635만원에 비해 377만원이나 비싸다.

개포 주공 아파트 단지의 동시다발 재건축이 대기 중인 강남구의 경우, 재건축 아파트 평균 가격이 3.3㎡당 4351만원에 이른다. 반포지구와 방배동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이 가시권에 들어선 서초구의 아파트 가격도 4109만원까지 치솟았다.

개별 단지 시세를 보면 급등세를 더 잘 실감할 수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개포 주공1단지의 경우, 전용 50㎡형의 가격이 올 1월 8억7000만~8억9000만원에서 9월 11억8000만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9개월 동안 약 3억원, 한달 평균 3300만원 이상 가격이 뛴 셈이다.

상대적으로 매물이 많지 않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가격은 개포 주공1단지를 상회한다. 압구정현대 13차 108㎡형은 1월 14억9000만~15억원이던 실거래가가 8월 19억2750만원까지 상승했다. 9개월 동안의 매매가 상승만 4억원이 넘는다. 상승률은 28.5%에 달한다.

개포동과 함께 최근 재건축 열기를 주도하고 있는 서초구 반포·잠원동 아파트들의 가격 질주도 이에 버금 간다. 잠원동 신반포2차 107㎡형은 1월 11억5000만원이던 매매가가 9월 16억5000만원으로 뛰었고 같은 기간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07㎡형 가격은 21억6700만원에서 25억원으로 치솟았다.

목동 아파트 역시 강남에 질세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최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의 성공 신화를 학습하면서 목동도 재건축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 재건축 아파트 매물을 노리는 단기 투기 자본까지 몰려들면서 거래는 없이 호가만 뛰는 거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2단지 95㎡형의 경우, 2월 9억원이던 매매가가 8월 10억7000만원까지 뛰었고 3단지 64㎡형 매매가는 2월 6억6000만~6억7000만원에서 8월 7억5000만~7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한해 동안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2억원의 가격 상승이 이뤄진 상태.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매매가가 급등 중인 강남이나 목동 아파트 중 상당수가 재건축이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지도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위에서 예로 든 아파트 단지 중 신반포2차나 목동2단지의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재건축 진행이 불투명한 상황이고 시범이나 진주아파트도 재건축이 구체화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내 H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중대형 평형대가 많은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1~3단지는 주민동의를 비롯해 재건축 추진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실제 재건축 성사 여부보다 재건축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광풍 또는 과열로 불리는 비이성적 상황에 가깝다는 점은 대다수가 동의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격 결정 요인인 수요와 공급이 아닌 투자(또는 투기) 심리가 시장을 주도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집값도 필요 이상 급등하고 있다.

강남구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가격이 오르고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돌아온 것은 좋지만 다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며 "지금과 같은 급등세가 계속되면 2006~2007년 버블 당시와 마찬가지로 규제 후폭풍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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