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사건'으로 본 뇌물죄…해도해도 너무한 솜방망이 처벌

뉴스1 제공 2016.10.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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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뇌물과 공무원직무 사이의 '인과관계'·'대가관계' 입증 요구
외국선 공무원 금품·향응 수수 사실만으로도 엄정 처벌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뇌물죄는 관료부패를 처벌하기 위한 죄다. 공무원이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 법이 인정하지 않는 이익을 취득한 경우 ‘뇌물수수’의 경우 정상적인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사회부패를 불러오는 중한 범죄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의 경우 공무원들의 뇌물범죄를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법원은 뇌물죄에 대해 경미한 처벌을 내리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법원은 뇌물의 일환으로 제공되는 ‘향응’ 수수 가액을 향응 제공 장소에 동석했던 사람들의 머릿수로 나누어 정하고, 뇌물죄의 양형기준 준수율도 낮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입법자들이 뇌물죄의 법정형을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정하고, 뇌물 가액이 많은 경우 특별법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 하도록 정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지나치게 낮은 형을 선고한다고 지적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범죄인 뇌물죄에 대해 법원이 선고한 형은 법정형의 1/3 수준에 불과하고, 수뢰액이 5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절반가량이 집행유예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물로 향응제공 받은 경우…뇌물가액은 향응 총액의 1/N?

'스폰서·사건청탁' 사건으로 구속 된 김형준 부장검사(46·사법연수원 25기)/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스폰서·사건청탁' 사건으로 구속 된 김형준 부장검사(46·사법연수원 25기)/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고교동창생으로부터 내연관계 유흥업소 종업원의 오피스텔 보증금과 생활비, 고급 유흥주점에서 지속적으로 향응을 제공 받았던 김형준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총액은 5800만원이다.

이 가운데 김 부장검사가 제공받은 향응 액수는 2400만원이다. 김 부장검사가 소위 ‘접대’를 받았던 술집들의 술값이 적게는 70만~100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하고 총 향응 수수 횟수가 29회로 밝혀진 것에 비춰 현실성이 없는 액수다.


이에대해 검찰관계자는 “법원 판례에 따라 향응 가액은 총 향응소요 액수의 1/N로 산정했다”고 밝혔다.

검찰관계자의 설명대로 법원은 뇌물의 일환으로 향응을 제공받은 경우 형의 선고의 근거가 되는 수뢰액을 총 향응비용을 1/N로 나눈 액수로 산정해왔다. 법원이 향응 액수를 1/N로 나누어 판단하는 것은 ‘향응’을 제공하는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상세하고 정밀한 뇌물가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다.

향응제공은 보통 향응제공자도 함께 동석한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향응제공자의 동석에 따른 비용까지 모두 향응 액수로 산정하면 ‘피고인’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형사소송이 ‘불리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원리를 적용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뇌물의 일환으로 향응을 제공받은 사람이 처벌받듯 공무원 등에게 향응을 뇌물로 적용한 경우도 뇌물죄로 처벌된다. 이 경우에도 향응제공자가 향응에 소요된 비용 전부를 뇌물로 제공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에 따라 뇌물액수 산정을 향응제공 당시 동석했던 사람들의 머릿수로 나눠 계산하고 있다.

향응이 제공되는 행태가 다양한 것도 뇌물가액을 1/N로 나누어 산정하는 주요한 이유다. 뇌물의 일환으로 ‘룸살롱’ 등에서 향응을 제공했지만 뇌물수수 공무원이 술은 한잔도 마시지 않고 성접대만 받은 경우 및 함께 2명이 동석해 술을 마셨지만 향응 제공 대상 공무원 한명만 성접대를 받은 경우 등 현실적으로 상세하고 정밀한 가액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좌를 통해 오가는 현금성 뇌물 등과 달리 ‘향응’제공은 고도의 은밀성을 특징으로 한다. 향응에 소요된 총 액수까지는 어찌어찌 밝혀내도 향응총액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소요됐는지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술값으로 200만원을 낸 사실이 밝혀져도 200만원의 구체적 항목까지 밝혀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법원은 뇌물죄를 판단할 때 향응 액수를 통상 1/N로 산정해 왔다.

◇ 법이 처벌요건으로 정하지 않은 '대가성' 입증하라는 법원

뇌물죄는 ‘관료’들의 범죄다. 형법 129조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경우”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공무원이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 법이 인정하지 않는 이익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뇌물을 수수하면 일반 국민들은 공무집행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고,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의 부정한 처신에 따라 공정경쟁이 왜곡되는 등 사회적 폐해가 적지 않다. 이 떄문에 외국의 경우 공무원의 뇌물범죄를 강하게 처벌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법원은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뇌물수수와 공무원의 직무 사이의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대가관계’까지 있어야 한다고 해석해왔다. 하지만 우리 형법 어디에서도 뇌물죄 처벌을 위해 ‘대가관계’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

즉 법원이 뇌물죄 성립에 ‘대가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대가성’이 필요하다고 해석해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벤츠 여검사’처럼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도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 받는 경우도 등장했다.

외국의 경우는 공무원이 금품이나 향응을 수수한 사실만 확인되면 엄정처벌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법원은 형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대가관계’를 법 해석을 통해 뇌물죄 성립요건으로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에 따라 ‘평소관리’의 대상이 되는 판검사 또는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좀처럼 뇌물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 떡값이나 차비 명목으로 받아 챙기는 돈도 대가성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뇌물죄 여간해서는 뇌물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

결국 법원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부정청탁 금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법원의 ‘부정청탁 금지법’ 해석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오영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체로 법원의 판례가 대가관계를 뇌물범죄 성립요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청탁금지법을 적용해도 기존 판례를 따라가면 직무관련성이 아니라 ‘직무와의 대가관계’ 입증을 요구할 테고 그러면 지금상황과 똑같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들의 뇌물죄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공무원이 뇌물을 수수하고 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먼저 징계를 받은 경우에는 이를 감형요소로 보고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해임된 경우에는 공무원 신분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보고, 해임되지 않고 징계를 받은 경우에는 이미 응당한 대가를 일정부분 치렀다고 판단해 형을 감형한다.

실제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의 뇌물죄 판결문을 살펴보면 집행유예 사유로 ‘해임’ ‘대가성 인식 부족’ ‘대가성 없음’ 등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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