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치 쌍둥이 같구나”...장준오와 백아영의 진실

머니투데이 박지혜 2016.11.0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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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9회>

“너희는 마치 쌍둥이 같구나”...장준오와 백아영의 진실


쌍둥이는 2학년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아영은 준오가 있어 안심이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학년이 바뀌자 요즘 부쩍 예뻐진 준오에게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준오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아영은 자연히 뒷전이 되었다.

“오늘 점심 같이 못 먹은 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다른 애들이 자꾸 같이 먹자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그건 알아. 하지만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 내가 미리 말 못한 거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너도 오늘 같은 날에는 나를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다른 친구랑 같이 밥을 먹던가 했어야지. 그 정도 융통성은 있어야 할 거 아냐?”



물론 준오는 그녀에게 다른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영은 입술을 짓씹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준오는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전율했다.

아영은 더 이상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백일장 사건이 터졌다.


신지수 선생님은 준오를 교무실로 불러 쌍둥이가 서로 글을 베껴 쓴 것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준오는 아영이 자신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고 둘러대 표절 혐의를 피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준오와 아영은 모두 수상자 목록에서 탈락시켰다.

대학 진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중요한 상이었기에 준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아영의 의심이었다.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 내가 왜 일부러 네 글을 베꼈겠어? 네 엄마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기억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했잖아!”

“왜 선생님 앞에서 내가 네 글을 베낀 것처럼 말씀드린 거야?”

“아니야. 난 오히려 네 편을 들어주었단 말이야. 네가 절대 내 글을 베낄 리가 없다고 했어. 그런데 선생님이 혼자 오해를 해서는 우리 둘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설교를 하는데……!”

한창 말다툼을 하던 중 아영의 시선이 준오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그녀의 옷에 달려 있어야 할 아영의 이름표가 없어진 것이다.

“학주가 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뗐어.”

준오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유행도 다 지났잖아. 이제 우리 학교에 절친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애들은 아무도 없다고.”

아영은 자신의 가슴에 달린 준오의 이름표를 만지작거렸다.

“……미안해. 난 몰랐어.”

그녀가 말했다.

물고기는 주노의 마지막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거대한 울타리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준오에게 옆 학교 남학생의 데이트 신청이 들어온 날,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다가 이내 급격한 실망에 빠져들었다.

그가 데이트를 신청한 상대는 준오가 아닌 아영이었기 때문이다.

준오는 쉽게 이웃을 모으기 위해 아영의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았다. 아영은 계정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준오가 그녀의 홈페이지를 대신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미안해, 아영아. 딱 한번만 나가 주라. 친구 좋다는 게 뭐니?”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운영자는 너잖아. 그 남자와 계속 채팅한 사람도 너고.”

“그건 상관없어. 걔가 데이트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너야. 넌 예쁘게 생겼으니까.”

“내가 예쁘다고?”

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오는 또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다.

“어쨌든 이번 일만 잘 끝내면 내가 지금까지 빌려간 돈도 다 갚고, 아무튼 절대 은혜 잊지 않을게. 친구 소원 좀 들어주라. 응?”

아영은 대답 대신 가슴에 매달린 준오의 이름표를 매만졌다. 그녀는 아직도 그것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알았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녀가 말했다.

다음날부터 아영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아영은 친구 준오가 짝사랑 해왔던 남자와 데이트를 즐겼다. 심지어 그들은 만난 지 하루 만에 모텔 촌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누가 그것을 보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정체 모를 목격자는 아영의 부정을 확실시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준오는 어느새 악녀에게 남자를 빼앗긴 드라마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몰려와 소문의 진상을 요구했다.

그때 그녀는 연락이 끊긴 아영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아영에게 데이트를 대신 나가달라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영은 중학교 때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또다시 친구의 남자에게 꼬리를 친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준오는 생각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소문의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영의 사진을 멋대로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고 남학생과 지속적으로 채팅을 해왔다는 사실은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아이들은 원하는 진실을 얻고 돌아간 다음 제멋대로 입방아를 찧어댔다.

아영은 열흘 만에 다시 등교했다. 그러자 1학년 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교묘하고 악질적인 따돌림이 이어졌다. 그녀의 미니 홈페이지는 대번에 욕설로 뒤덮였다.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아영의 이니셜을 제목으로 한 음란한 루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준오는 더 이상 아영의 홈페이지를 관리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그녀를 만나도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적어도 아영을 괴롭히는 무리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모두 내버려두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아영과 학교에서 마주하지 않게 될 때까지.

준오는 노래방에 앉아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거리에서 사귄 친구가 마이크를 붙잡고 악을 쓰고 있었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불빛을 내며 진동했다. 발신자 이름을 본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을 낚아챈 다음 복도로 빠져나왔다.

“아, 아영이니?”

준오가 물었다.

“……준오야.”

아영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했니?”

복도에 누구라도 지나가주기를 바랐다. 혹시 친구들 중 누군가 자신을 걱정하여 뒤쫓아 나오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적당히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노래방에서는 쿵쿵거리는 반주소리만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준오는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숨을 골랐다.

“내가 뭘 했다고?”

“학교에 소문 퍼뜨린 거. 네가 그랬냐고.”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영은 담담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볼일이 있어 집밖으로 나왔다가 학교 동급생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배신자라고 불렀다. 아영은 그들에게 달려가 이유를 따져 물었다.

그들은 아영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네가 말했다고 했어. 네가 좋아하던 남자를 내가 빼앗아갔다고……. 그리고 백일장에서 수상이 취소된 것도 전부 내 탓이라고 말이야.”

휴대폰을 든 준오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니야.”

“뭐가?”

“방금 네가 한 말, 사실 아니라고.”

“그 애들이 네가 학교에서 떠드는 걸 옆에서 들었다고 했어.”

“넌 그 말을 믿어? 널 괴롭히는 애들의 말을? 넌 내 친구야. 그럼 내 말을 더 믿어야 하는 거 아냐?”

“친구?”

아영이 되물었다.

“우리가 친구라고?”

준오는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지금은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하는데, 도무지 잊히지가 않았다. 준오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진실은 어느새 두드러기처럼 온몸을 뒤덮었다.

나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어린 시절부터 내게 없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네가 끔찍하게 싫었다고.

그럼에도 너와 함께 있었던 건, 너에게 거짓말을 인정받을 때마다 느꼈던 만족감 때문이었노라고.

아영은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야외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화내려는 거 아냐. 네 진심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제발 대답해 줘. 정말 네가 한 짓이 아니야?”

잠시 아영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준오의 이성은 뒷덜미를 잡아채고 속삭였다.

진실을 말한 다음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다.

만약 사실을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앙심을 품은 아영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할 수도 있었다. 유명 인터넷 게시판에 준오가 지금까지 했던 짓을 써서 올린다면 그녀는 순식간에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일은 따로 있다.

진실을 밝히면 자신은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거짓말을 들킨 거짓말쟁이가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쳐왔던 기간의 두 배 이상을 참말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에게 모욕과 냉대를 형벌처럼 퍼부을 것이다.

준오는 본능적으로 늘 편히 걷던 길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야.”

준오는 진짜 억울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꾸며냈다.

“난 모르는 일이야. 정말이라니까?”

수화기 너머로 잠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준오는 눈앞이 핑 돌아 벽에 등을 기댔다. 이마를 만져보니 땀이 흥건했다. 위기를 넘겼으니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심장은 이상하게도 자꾸 날뛰었다. 다시 노래방으로 들어가 보니 친구들은 벌써 자리를 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오는 친구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맸다.

휴대폰은 끝내 다시 울리지 않았다.

아영의 자살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10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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