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창조경제혁신센터도 '김영란법 덫' 걸렸다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6.10.10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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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 "법적용 대상" 판단, 창업가와 투자자 연결역할 '부정청탁' 가능성…"황당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대전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사진=뉴스1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대전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사진=뉴스1


# A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예비)창업가들이 찾아와 상담을 원한다. 투자 정보를 묻고 투자자 연결도 요청한다. 센터 관계자는 그동안 쌓은 인맥을 통해 창업가와 투자자의 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이는 '부정 청탁'이 될 수 있다.

# B창조경제혁신센터는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 설명회(IR)를 연다. 스타트업에게 투자유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센터는 내부 선발과정으로 뽑은 스타트업은 물론 다른 스타트업에도 IR 참여 기회를 부여해왔다. 가능한 많은 스타트업에게 폭넓게 지원해주기 위해서다. 이제는 위험한 짓이다. 별도로 선정·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이 역시 불법행위가 될 수 있어서다.



박근혜 정부 대표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맞았다. 아이디어에 승부를 걸고 시작한 창업가들에게 투자·R&D(연구·개발) 지원금·유통 판로 개척 등 전방위적 지원을 담당하는 센터 역할 자체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애초 공직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할 법에 '공무수행사인'(私人) 등의 명목으로 민간인까지 포함시키다 보니 곳곳에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터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센터 관계자=공무수행사인, 파견 나온 기업인도 법 적용

정부의 창조경제정책에 구심점인 혁신센터는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돼 있다. 각 센터는 전담 대기업과 함께 스타트업 육성·글로벌 진출 지원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주력한다는 게 목표다.

센터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라는 게 담당 부처의 판단이다. 김영란법은 중앙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외에도 공무수행사인을 법 적용 대상자로 삼는다. 공공기관 업무를 위임·위탁받아 수행하는 민간인을 의미한다.


센터 담당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센터 설립 근거 법령인 '과학기술기본법 제16조4'에 따라 공무수행사인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기본법에는 센터 설립과 업무·비용 지원 등에 대한 정부의 의무 조항이 담겼다. 미래부는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수행할 기관으로 센터를 지정·지원하므로 '공공기관 업무 위임·위탁'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센터 임직원은 물론 파견 나온 민간 기업 담당자들도 모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스타트업 지원, 일일이 선발·심사 과정 안 거치면 '불법' 전락 위기

센터 관계자들은 당황스럽다. 창업가와 투자자를 연결해주거나 창업가를 지원해주는 일체의 역할이 김영란법에 걸려들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한 센터 책임자는 "창업가가 투자자 연락처를 묻거나 소개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연결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인데 이게 청탁행위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센터가 지원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수도 제한받게 됐다. 각 센터는 1년에 한 두 차례 집중 지원할 스타트업을 선발해왔다. 이제는 공식 프로그램 이외에 센터를 찾는 스타트업에게는 지원을 해줘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센터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이 센터를 찾고 창업·투자 상담을 요청한다"며 "주변에서 좋은 창업가를 소개해 주면 IR 참여 기회를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센터가 선발한 보육 기업이 아닌 다른 스타트업을 IR에 참여시키려면 별도의 선발·심사 과정이 필수다.

미래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센터가 스타트업에 폭넓게 지원해왔지만 이제는 어렵다"며 "(청탁행위가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남권 한 센터 관계자는 "모든 창업 정보·지원을 센터에서 얻을 수 있게 한다는 '허브'(hub) 역할을 목표로 설립됐는데 특정 기업만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외부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일일이 따로 선발·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소모적이고 불편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창업 무한경쟁, 기막힌 한국 현실 서글퍼"

또 기본적으로 센터 관계자는 업무 관련성이 있는 창업가에게 '음식물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 등을 초과해 받아선 안된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 연락마저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내·외 각종 창업대회와 콘퍼런스 등에 참석해 기준가액이 넘는 식사라도 하게 되면 이 역시 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한다. 센터 예산으로 출장비를 사용할 수 있지만 자유롭던 이전에 비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센터 관계자는 "큰 대가 없이 밤낮으로 창업가들을 위해 일해왔는데 허무하다"며 "미국과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쟁자들은 창업지원에 사활을 거는데 우리의 현실이 한심하고 서글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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