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무기를 앞세워 이들이 수행해온 그간의 주된 임무는 안보를 위한 첩보 수집보다 내부 정치를 위한 불법 공작이 다수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국정원의 조직구조 등 모든 부문에 칼을 댄 개혁의 순간도 있었지만,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처럼 정권의 시녀 역할로 군림하던 때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책은 국가 2, 3급의 비밀을 통해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 공작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10·26 사건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까지 국정원이 개입한 역사를 훑는다. 또 국정원 전·현직 원장과 고위 간부, 요원의 ‘입’을 통해 실제적 증언을 담았다.
책은 한국 정보의 연혁을 통한 국정원의 역사로 시작해 정치 개입과 공작 사례를 통한 ‘맨 파워’와 인력 관리 문제, 탈북자 업무와 관련한 전근대성, 무개념 인사정책, 국정원의 도전과 개혁 방안 등을 낱낱이 파헤친다.
눈에 띄는 내용 중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 당시 탈레반에 지급한 ‘인질 몸값’과 관련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시선을 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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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당시 ‘인질 몸값’과 관련한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좀 들거라는 말은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는 내가 의도적으로 보고를 안 받았다”며 “공식적으로는 뭐 부인해야지”라고 말했다. 2명의 인질이 피살된 상황에서 정부는 테러단체와는 협상·거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비공식적’으로 돈을 지불한 셈이다.
저자가 2008년 당시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결산보고 및 심의에 참여한 복수의 정보위원으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인질 석방 비용으로 2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90억 원)를 지불했다. 국정원 예산 중 예비비 불용액이 매년 평균 200, 300억 원 수준으로 남겨져 있는 것과 비교하면 2007년 ‘불용액=0’은 인질 몸값에 사용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몸값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 지시로 3000만 달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남은 1000만 달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제공된 것으로 파악된다. 저자는 “취재결과 국정원 해외 비밀계좌에 예치한 자금에 대한 지출을 승인받아 김만복 원장이 인질 석방 값으로 2000만 달러, 북측에 ‘수해 위로 및 성의 표시’ 명목으로 1000만 달러를 건넸다”고 주장했다.
특수보직을 가진 탈북자에겐 호화 안전가옥을 제공하지만, 가난한 탈북자에 대해선 대사관 진입은커녕 북·중 국경의 지뢰밭으로 내모는 현실도 대외비 자료를 근거로 조명한다.
저자는 “국정원이 국가 안보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한 공로도 있지만, 특정 정치인 탄압 등 과거 회귀식 정권안보에 치중하면서 첩보능력을 크게 상실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진정한 국가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예산은 감사원의 감시를 받고 조직운영은 국내정치가 아닌 대북·해외 첩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크릿파일 국정원=김당 지음. 메디치 펴냄. 664쪽/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