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예약 1팀, 이러다 문 닫습니다" 세종상가 '곡소리'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세종=정현수 기자, 세종=박경담 기자, 세종=정혜윤 기자 2016.09.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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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김영란법 상륙한 정부세종청사 인근 상가… 손님 절반 뚝, 종업원들은 일자리 걱정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인근 일식당. 평소엔 예약이 가득 차지만, 김영란법 시행일인 이날엔 예약이 아예 없다. /사진= 정진우 기자28일 낮 정부세종청사 인근 일식당. 평소엔 예약이 가득 차지만, 김영란법 시행일인 이날엔 예약이 아예 없다. /사진= 정진우 기자


"하루 만에 손님이 20분의 1로 줄었습니다. 오늘 저녁 예약은 딱 한 팀밖에 없네요."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인근 세종1번가 상가 A한식당.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일 점심 시간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청사 주변에서 맛집으로 소문나 평소 점심 시간엔 자리가 없을 정도인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팀은 딱 4팀. 점심 메뉴로 인기가 높은 보리굴비 정식(1인당 2만원)과 불고기 정식(1만8000원)이 김영란법이 규제하는 가격(3만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전날 저녁 100여명의 손님을 받았지만, 당장 이날 저녁엔 5명(1팀)이 예약 손님 전부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김진수(42, 가명)씨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거의 개점 휴업 분위기인데, 앞으로 메뉴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바로 옆 B일식당은 사정이 더 안 좋았다. 이 식당 입구에 놓인 예약 간판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점심 시간엔 10개팀 이상 예약하고, 저녁에도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 점심엔 예약 손님은 아예 없었고, 테이블 3개에만 손님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 이지숙(45세, 가명)씨는 "점심 시간에 손님이 이렇게 없었던 것은 개점 이후 처음이다"며 "앞으로 장사가 계속 이렇게 안되면 종업원들도 줄여야 한다"고 푸념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인근 세종중앙타운 상가. 평소 점심시간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지만, 이날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사진= 박경담 기자<br>김영란법이 시행된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인근 세종중앙타운 상가. 평소 점심시간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지만, 이날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사진= 박경담 기자<br>
김영란법 시행 첫날 세종 관가 인근 식당가에선 '비명'이 들렸다. 국밥 등 간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1인당 1만원 안팎인 식당엔 손님들이 제법 있었지만, 2만원 이상 식당엔 파리만 날렸다.


관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평소 예약하기 힘든 곳도 점심시간에 빈 자리가 많았다.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고 있는 기획재정부 등 일부 부처를 감안해도, 손님이 확연하게 줄었다는 지적이다.

세종중앙타운 상가 C고깃집 성민경 매니저(56세)는 "오늘 점심 예약이 4건인데 평소보다 절반가량 줄었다"며 "삼겹살집이지만 저녁에 2인분 이상 먹고 술까지 마시면 1인당 3만원이 넘어 손님이 많이 오지 않을 거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건물 D한우집 대표 오인석(54, 가명)씨는 "어제 저녁에 손님들이 다녀가면서 '오늘이 마지막이다'고 말했다"며 "점심에도 고기 먹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모두 단품만 주문했고, 저녁 예약도 평소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5동 구내식당. 김영란법 시행일인 이날 평소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을 이요했다. /사진= 정현수 기자28일 낮 정부세종청사 5동 구내식당. 김영란법 시행일인 이날 평소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구내식당을 이요했다. /사진= 정현수 기자
반면 청사내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공무원들로 붐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2동 구내식당에선 고위 공무원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공정위 한 관료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밖에서 밥을 먹으면 언론 등 지켜보는 눈이 많아 불편할 것 같아서 구내식당에 왔다"며 "앞으로 외부 약속이 많이 없기 때문에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과 직원들도 굳이 멀리까지 가서 밥을 먹는 것보다 구내식당을 이용하겠다고 한다"며 "간단히 식사하고 남는 시간에 운동을 비롯해 개인 활동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식당 영양사 박소민(27, 가명)씨는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첫날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평소보다 넉넉한 양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각 농림축산식품부가 있는 5동 구내식당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밥을 먹으려고 대기하는 줄이 문 바깥까지 이어졌다. 평소에도 이용자들이 많은 편이지만, 이 날은 더 붐비는 모습이었다.

특히 5동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기재부(4동) 공무원 상당수가 이날 서울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용자들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영란법 시행일인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2동 공정거래위원회 구내식당. 평소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몰렸다./사진= 정진우 기자김영란법 시행일인 28일 낮 정부세종청사 2동 공정거래위원회 구내식당. 평소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몰렸다./사진= 정진우 기자
일부 공무원들은 점심을 먹으러 청사 주변 상가로 가다가 곳곳에서 방송 카메라 등 취재진을 보고선 청사 구내식당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김영란법이 앞으로 청사 주변 상권을 비롯해 국내 외식 소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자는 김영란법의 취지엔 공감을 하지만, 당분간 식당가를 비롯해 외식 문화 전반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지금 관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시범 케이스로 걸리지 말자는 분위기가 많기 때문에, 더치페이라 하더라도 보는 눈을 의식해 외부에서 여럿이 식사하는 일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최근 파업동향 및 대응방안 관계장관회의'를 연 뒤 기자들과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대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고용문제가 생길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일부 식당에서) 단가를 낮추기 위해 뷔페식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거기 일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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