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내진설계 수준에 대한 첫 물음에 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 소장(사진)은 못내 아쉬움을 내비쳤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유 소장은 30여년간 건축 분야 한 곳만 판 베테랑이다.
"최근 경주 지진으로 내진설계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어요. 오전에 시작한 회의가 오후까지 이어지는 일도 수 차례고, 외부 출장도 잦아졌어요. 내진 설계와 관련한 문의 전화가 쉴 새 없지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내진설계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정책을 지속 추진하면서도 실제 지진발생이나 피해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해온 게 사실이었죠."
우리나라 내진설계는 1988년 최초 제정된 이래 2005년에 건축구조설계기준(국토부 고시)의 형태로 체계를 완비했다. 이후 약 3~4년의 주기로 해외 최신 기준을 반영, 개정해왔다.
이 시각 인기 뉴스
현재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500㎡ 이상의 건축물만 내진설계를 의무화 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이 기준을 지상 2층 이상이나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들 건축물은 규모 5.5~6.0의 지진에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렇다면 높은 건물일수록 지진에 취약할까. 유 소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초고층 건축물은 지진뿐만 아니라 태풍 등의 횡력에도 안전하게 설계해야 하기 오히려 더 큰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잠실 롯데월드 타워는 규모 7.0의 지진에도 버틸 수 있다는 분석결과도 이같은 설계 덕분이라는 얘기다.
유 소장은 지진으로 건물에 영향이 생길 경우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짚어줬다.
"지진이 발생하면 일차적으로 벽체에 금이 가거나 벽·기둥과 연결된 부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구조체에도 손상이 갈 수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기죠. 더 큰 지진이 오면 철근이나 철골에 손상이 발생합니다."
지진 붕괴 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내부공간에 대해 유 소장도 쉽게 단정하지 못했다. 다만 이전의 붕괴 사고를 반추해 보면 건물의 코어 부분에 해당하는 계단실이나 엘리베이터가 비교적 안전한 내부 공간이라 할 수 있다고 유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경주지진을 계기로 내진설계·지진피해 등에 대한 정책·기술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유 소장은 지진대응 인프라 구축 연구를 기획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개별 건축물의 안전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번 경주 지진을 계기로 기존 시설물의 내진 설계를 어떻게 보강할지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제도의 도입과 정보 공유가 필요합니다. 다만 과학적 근거 없이 지진 발생 가능 규모나 예상 피해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