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모신 조상묘…"관습상 인정" vs "토지소유권 보호를"

뉴스1 제공 2016.09.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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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오늘 '분묘기지권' 존속 판단 위한 공개변론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뉴스1 © News1 임경호 기자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뉴스1 © News1 임경호 기자


남의 땅에 모신 조상의 묘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을 계속 인정할지 여부를 두고 찬반 양측이 공방을 벌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2일 오후 2시 A씨(79)가 B씨(63) 등을 상대로 낸 분묘철거 소송 상고심 판단을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일정 기간 타인의 토지에서 제사를 지냈을 경우 그 권리를 인정할지 여부다. 분묘기지권이란 분묘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다른 사람의 땅에 주인의 승낙없이 분묘를 설치했더라도 20년간 평온하게 점유하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얻게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분묘기지권을 얻게 되면 땅을 이용하는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최근 분묘와 제사에 대한 국민의식이 변화하고 있고,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시행에 따라 관습법상 분묘기지권 이론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대법원은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게 됐다.

A씨 측 참고인 오시영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관습상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종전 판례는 폐기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오 교수는 조선시대 묘지소송 사례와 일제시대 사료를 근거로 우리나라에는 분묘기지권을 인정할 관습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분묘기지권이 처음으로 인정된 1927년 조선고등법원 판결 당시에도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장묘방법에 대한 인식 변화, 매장 선호 감소, 장사법제 정비,임야 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재산권 행사 개념 확립 등 사정을 볼 때 분묘기지권 관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B씨 측 참고인으로 나선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묘기지권은 필요불가결한 법률제도"라고 맞섰다.

이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도 "산림공유 이념에 따라 분묘를 설치한 경우 분묘 점유권을 인정한 것으로 시효취득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1927년 조선고등법원의 판결로 분묘기지권에 관한 시효취득이 인정됐고 대법원은 이를 승계해 현재까지 인정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이 2001년 시행됨에 따라 분묘기지권을 관습법상 권리로 인정할 수 없다는 A씨 측 의견을 두고도 팽팽하게 맞붙었다.

장사법은 분묘설치 기간을 최장 6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승낙 없이 묘지를 설치한 경우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사용권이나 묘지 보존을 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오 교수는 "장사법을 통해 분묘기지권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법자의 의지가 천명된 것"이라며 "신법 우선의 원칙에 의해 구법인 관습법이 장사법에 의해 규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교수는 "장사법은 단순히 분묘의 설치 제한, 설치기간의 제한을 목적으로 한다"며 "개인묘지의 법률문제를 느슨하게 규율한 입법태도에서 사설묘지에 해당하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려는 입법자의 의사가 추정된다"고 반박했다.

A씨 측 대리인 최문수 변호사는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법이 존재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은 사라졌다"며 "장묘 문화 및 인식 변화에 따라 토지소유권 보호를 위해 전향적인 판단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B씨 측 대리인 조홍준 변호사는 "국민 대부분은 여전히 분묘에 대한 전통적 인식을 갖고 있다"며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진 관습법 폐지는 경계해야 한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에서 청취한 의견을 참고해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판례를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A씨는 2011년 12월 강원 원주 자신의 땅에 있는 6기의 분묘를 관리해 온 B씨를 상대로 분묘를 이전하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에 따라 "6기 중 5기에 대해 분묘기지권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며 1기만 이전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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