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민연금 공공투자는 꼼수다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2016.09.2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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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국민연금 공공투자는 꼼수다


남에게 불륜인 것은 내게도 불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를 당론으로 삼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낸 데 이어 지난 19일엔 한국노총과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부문에 투자하기로 정책협약을 맺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한국노총 몫의 위원이 1명 있으므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더민주가 ‘국민연금 공공투자 특위’까지 만들어 공공임대주택사업, 보육시설 확충 등에 국민연금을 쓰자는 방안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편법이다.

공공임대주택을 짓든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든 간에 이는 정부가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내거나 해서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의 재정이 들어가야 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다며 ‘편법’(김종인) ‘비정상적인 처사(이언주)’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비판했던 더민주였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부처가 한은을 활용하는 게 우회로였다면 더민주가 국민연금을 쓰는 것 역시 정공법이 아니다.

더민주의 방안은 국민연금이 직접 공공임대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이 국민안심채권이란 이름의 특수채권 100조원(국민연금 기금운용액 535조원의 19%)어치를 발행하고 이를 국민연금이 10년에 걸쳐 사 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국민연금이 소진될 때에 국내자산의 현금화가 쉽지 않고 자산가격이 급락할 수 있어 해외투자, 대체투자 등의 비중을 높이려던 방향과 배치된다.

더민주는 원금에다 약정이자도 보장된다고 주장하는데, 일반국공채보다 높은 이자를 정부가 국민연금에 줘야 한다면 정부 재정은 그만큼 마이너스가 된다.

게다가 공공 임대주택은 보증금과 임대료를 낮게 매길 수 밖에 없다. LH의 주된 적자요인도 ‘지을수록 손실(1가구당 9600만원)이 나는’ 임대주택이었고 SH도 임대주택의 손실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안심채권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면 정부가, 그렇지 못하면 국민연금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더민주의 말대로 수익률이 높다면, 2001년부터 정부가 적자를 보전중인 공무원연금, 국민연금보다 18년 앞선 2042년에 고갈되는 사학연금이 국민안심채권을 더 인수해야 하지 않을까?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메워 줘야 하는데,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하든 국민안심채권으로 많은 이자를 주든 어차피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또 고수익 국공채라면 민간에서 충분히 소화될 터이니 굳이 가입자들의 걱정과 반발을 무릅쓰고 국민연금을 가져다 쓸 이유도 없다.

공공임대주택이나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어야 하는데 ‘재원이 없어 100조원의 증세를 해야 한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지지를 못 받으니 ‘국민연금 공공투자’로 포장해 혹세무민하려는 것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국민연금 공공투자 정책이 “당파적으로 보이면 절대 관철될 수 없다”고 했지만 어떤 사회적 합의도 없는 이런 시도가 당파적으로 안 비칠 수 있을까?

더민주가 한국노총 뿐만 아니라 민노총 등과도 정책협약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는데 지도부는 국민연금 가입자인 다수 조합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건 아닌지 깊이 따져 봐야 한다.

역시 국민연금으로 청년희망주택을 짓겠다는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부담을 국민에게 안기는 한은의 발권력이 동원된 것은 나쁜 선례“라고 했다.

두 당을 비롯해 정치권이나 정부가 한번 국민연금을 빼서 쓰기 시작하면, 앞으로 국민연금은 모든 정파, 당파들의 쌈짓돈이 될 가능성이 커지므로 그런 전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

우 대표가 국민연금 공공투자를 ‘묘수’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정부가 100조원의 세금을 더 걷거나 일반국공채를 발행해 그 돈을 써야 할 일을 살짝 꼬아 놓은 꼼수에 불과하다.

그렇게 늘어난 정부나 공공부채에 대한 납세부담(혹은 국민연금 적자나 고갈에 따른 짐)은 결국엔 공공임대주택에 태어나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게 될 아이들이 나중에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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