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돈 시인은 1960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하여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이다. 2011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그 섬을 만나다’를 내었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도 “약재를 꺼내려고 한약장 앞에 섰다/ 사각형 안에 한약재들이 가지런하다/ 그들은 치료되는 목표치로 나를 유혹한다”는 생업의 경험을 시로 형상하고 있다.
바람도 투명하게 언다
아침 추위가 독거인의 허리를 꺾는 결빙의 계절
도시의 까치 떼는 빈 가로수에 남은 볕을 쪼고 있다
공원은 청춘으로 물들고 호프집은 밤을 삼키는 습관이 있다
출구 안에서 기생하는 두꺼운 어둠
차디찬 손바닥은 극점으로 돌아 극점에서 껴안는다
안팎은
극과 극
공갈빵을 굽던 손은 몇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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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오던 길을 돌아본다
엎드린 자에게 몇 푼의 위로를 던졌던가
가쁜 숨을 흘리며 이빨을 환히 드러낸 우리가
하소연 틈으로 무심한 등이 사라진다
어제의 눈빛이 오늘과 다르지 않다
노인의 휘어진 등으로 북극 그림자가 뭉친다
바람은 이곳에서 체온을 바꾼다 - ‘4호선 4번 출구’ 전문
이렇게 시인은 어느 겨울 서울지하철 4호선 어느 역의 4번 출구 경험을 시로 형상하기도 한다. 아주 추운 겨울 차창 밖에 잎이 다 진 가로수가 있고, 가로수 위에 있는 까치가 볕을 쪼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러나 화려한 상가가 있는 역의 출구 밖은 독거인을 더 춥게 하고, 술집이 밤새 문을 열고, 골갈빵을 굽고, 구걸하는 노숙자가 있다. 행인들은 노숙자의 구걸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도심의 춥고 삭막한 모습을 한편의 풍속화로 그리고 있다.
◇ 아홉 개의 계단 =김진돈 지음. 작가세계. 142쪽/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