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삶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생활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절규이자 저항이었다.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며 부른 “여덟 시간은 일을 하고, 여덟 시간은 쉬고, 남은 여덟 시간 사람다운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은 오리라”는 노래가 그러했고, 1970년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몸을 불사르며 주장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는 외침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 외침은 1989년 주 44시간 노동제가 시행되면서 실현될 줄 알았다.
고도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 경제성장은 오히려 둔화되고 경기침체도 장기화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문제 해결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줄여 고용을 늘려야 하고 동시에 짧은 시간 일하고도 실질임금을 올려야 하니 노동시간 단축의 역할이 그만큼 더 커졌다. 그런데 지금 그 목표를 겨냥한 대책은 마련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사람다운 생활, 행복한 삶 그리고 실업문제와 생산성 향상의 문제가 동시에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고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일·가정 양립은 꿈도 꾸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도 많으며, 실업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예비노동자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당위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 얘기만 나오면 국가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기업의 추가고용 및 인건비 부담에 대한 고려가 바로 따라나오는데 사람다운 생활을 원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는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하나님이 내리신 소중한 축복을 우리는 왜 받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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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의 제일 큰 당위성은 바로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 말을 어떤 정치인이 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