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집착하면 '위기설·대증요법' 등장…일본처럼 추락한다"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유엄식 기자 2016.09.0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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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엿보기]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도전·실험정신 살리는 정책이 성장엔진 살린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연구원들은 바쁘다. 굳이 찾지 않아도,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 덕분에 연구할 대상과 분야가 많아서다. 우리 사회의 싱크탱크(Think Tank) 역할을 하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 머니투데이가 ‘싱크 엿보기’를 통해 연구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


'2.5%'


우리나라 대표 민간 싱크탱크인 LG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2일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다. 이는 국내·외 경제전망 기관들이 내놓은 수치 중 한국경제연구원(2.3%) 다음으로 낮다. 이틀 후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잡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말 2.8%로 내다봤다. 여기엔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이란 전제 조건이 들어갔다. 추경이 편성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라면 2.5%까지 떨어질 것이란 게 기재부의 예상이었다.



LG경제연구원이 우리 경제 상황을 가장 비관적으로 본 것일 수 있지만 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히려 지금처럼 글로벌 경기가 둔화된 상황에선 2%대 중반 성장률이 현실적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과거 해마다 5% 이상 성장했던 나라에서 성장률이 반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대내·외 여건을 감안해 같은 숫자라도 다르게 읽을 필요가 있다는거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LG경제연구원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난 김 원장은 "경기 둔화가 우리나라만 국한된 게 아니다”며 “전 셰계가 불황인 상황을 감안하면 2%대 중반 성장률이 오히려 정상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제 부진에 다른 선진국들이 1%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2%대 성장률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원장은 “특별한 성장 모멘텀이 없다면 (저성장 기조가) 상당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멀리 보면 성장률 자체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당장 올 하반기 여건이 더 안 좋을 것으로 예측했다. 경상수지가 흑자인 상황에서 환율하락(원화절상) 가능성이 큰 탓에 수출이 좋지 않고 내수가 살아날 모멘텀도 보이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에도 올해와 같거나 좋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 숫자에 연연하다 보면 계속 위기설이 나올 것이고, 정부 정책도 단기적이면서 대증적 요법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김 원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된 대비책이 나올 것”이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 분위기 속에서 경제 주체들이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지표로 산출되는 숫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성장 활력의 둔화를 꼽은 것 역시 이런 까닭이다. 눈 앞의 성장률보다 점점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되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 원장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세계 최고 국가가 되는 것인데, 이를 위한 정책이나 전략이 부족하다”며 “국민들이 더 이상 희망과 열정을 얘기하지 않는 게 답답한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새로운 성장판을 열고자 하는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이 사라졌다는 것.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사진= 이동훈
김 원장은 일본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세계 경제를 호령했던 일본도 20년 전에 지금 우리처럼 성장동력이 식어간다는 보고서도 많이 나왔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성장이 멈췄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그런 일본을 우리가 20년 격차를 두고 정확히 닮아가고 있고, 성장이 정체되는 속도까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며 “일본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장기 비전이 빠진 정책 등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을 바꾸고, 성장률이 하락할 때마다 단기대책으로 대응하다가 위기를 벗어날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 그는 “일본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해 지금처럼 활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에게 앞으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더 이상 ‘추격형 경제’에선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끊임 없는 혁신과 도전을 통해 우리가 먼저 새로운 성장동력 분야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기자동차’와 ‘바이오산업’, ‘4차 산업혁명 연관 산업’ 등을 우리가 선점해야 할 분야로 꼽았다.

김 원장은 “앞으로 고성장할 분야가 전기차와 바이오 산업”이라며 “지난 100년간 산업발전을 이끈 게 내연기관으로 이뤄진 자동차 산업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파생된 전기차가 성장을 이끌 것이고, 사람들의 수명연장 욕구가 반영되는 바이오 산업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아직 개척해야 할 영역이 많은 4차 산업혁명도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며 “로봇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 등이 모이는 결과물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우리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 우리 경제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고, 정부 정책도 여기에 맞춰져야한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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