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기자.
‘진’ 또는 ‘위’라고 적힌 감정 내용만이 감정료를 낸 의뢰자에게 돌아온다. 국내 근현대 미술품 감정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 발급하는 감정서 얘기다. 감평원은 이 밖에도 여러 면에서 다른 국가와 다르다. 무엇보다 감정서가 너무 ‘간략’하다.
미술계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등 미술 시장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감정자 이름이 기재돼 감정서가 발급된다. 하지만 감평원에서 발급하는 감정서는 무기명이다. 감정사가 누구인지 모르니 직접 반론을 제기하거나 해명을 요구하기 힘들다.
감정 근거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장 미셸 르나드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 부회장은 “프랑스의 감정사들은 감정서에 적는 문장을 고민한다”고 했다. 작품의 진위나 어떤 시대에 제작되었는지 등 감정 결론에 이르게 된 배경을 필요하면 수사적인 표현도 곁들이며 구체적으로 의뢰자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감평원 감정서에는 구체적인 감정 이유가 안 적혀 있다. 한 미술 시장 컨설턴트는 “감정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꾸미느냐는 서비스의 문제이자 책임감과 관련된 사안임에도 우리나라 감정에서는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새 장관 취임 등 변수가 있지만, 9월 중에는 미술품 유통 투명화를 위한 관련 법 제정 등 정책 방향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정책 확정 이후 감정서 양식과 관련한 연구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 감정기구가 설립되면 감정 시장의 경쟁은 지금보다 거세질 것이다. 감평원이 그간의 권위를 인정받고 감정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려면 고객 지향적인 서비스를 더는 늦춰서는 안 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