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립-남상태 '10년 난타전'...난파선 돼가는 대우조선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6.08.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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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비하인드]비리척결자 정성립 현 대우조선 사장, 이번엔 비리 혐의 몰린 사연

검찰이 대우조선해양 (31,150원 ▼100 -0.32%)의 비리조사와 관련해 이 회사 전직 경영진 뿐만 아니라 현 경영진도 1200억원대 회계조작을 했다는 혐의를 잡아 수사에 나섰다. 과거 부실의 청산을 주도했던 현 경영진이 같은 비리 추궁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을 준다.

대우조선 현 경영진은 지난해 5월 정성립 사장이 취임하고 한국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의 김열중 재무 부사장이 팀워크를 이루면서 주목 받아왔다.



정성립 현 대우조선 사장정성립 현 대우조선 사장


정 사장 등은 취임 두 달 만에 회계에 2조원대 부실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대주주인 산은에 보고한 이른바 휘슬블로어(내부고발자)라고 할 수 있다. 당국과 사정기관의 특별 비리수사를 촉발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한 이들이 전임 경영진과 비슷한 비리를 저질렀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리 척결자들이 비리 혐의자로 내몰린 꼴이다.

10년 전 구원(仇怨)의 시작



정성립 사장이 대우조선에서 '집권'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 사장은 1974년 산업은행에서 금융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온 이력으로 2년 뒤인 1976년 동해조선공업으로 옮겨 제조업에 발을 들였다. 그는 엘리트답게 고속승진을 거듭해 1981년부터 대우중공업에서 임원생활을 시작했다. 정 사장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살아남아 1997년 대우조선해양이 산은 산하로 들어간 이후 관리담당 전무를 역임했다.

정성립 사장은 부사장 시절 산은 출신이라는 경력을 십분 발휘해 대주주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에는 자연스럽게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03년 말 2년 임기를 마치고도 대주주의 재신임을 받아 그해 10월에 3년 임기의 재임 기간을 시작했다.

잘 나가던 정 사장은 연임 3년 차인 2006년 1월 예상치 못했던 사태를 맞았다. 연말에 명예로운 퇴진을 기대했지만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전격 사퇴한 것이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당시 10월 임시주총에서 사장을 뽑는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 정 사장 본인이 일찍 용퇴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지만 내막은 달랐다"며 "5년여 재임 기간 중 권력이 (정 사장 중심으로) 집중되고 정관계는 물론 언론 등을 통해서도 경영진에 대한 납품비리 투서가 나타나자 물러선 것"이라고 말했다.


2인자에서 부상한 재무통, 남상태의 시대

정성립 사장이 떠난 자리에는 5년간 2인자에 머물던 남상태 재무담당 부사장이 올라섰다. 남 사장은 전임 정 사장과 같은 1950년생으로 동갑이지만 연세대 대우중공업 출신의 재무통으로 유명했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
두 사람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정 사장은 1981년부터 임원에 올라 국내영업과 인사, 관리담당으로 커왔다. 이에 비해 남상태 사장은 그보다 늦은 90년대에 임원에 올랐고 2000년에야 비로소 자금담당 임원을 맡아 기획과 재무 회계 등을 전담했다. 남 사장에게는 뒤늦게 대우중공업에 합류한 정 사장이 먼저 승진을 거듭하고 대표이사를 5년간 지속한 것이 부담이었을 수 있다.

대우조선 고위 관계자는 "정 사장이 연임 시절에 대주주와 관계를 도모하고 국내 영업 등을 총괄했지만 그 시기 벤더(납품사) 관리나 재정, 전략기획 등의 업무는 남 부사장이 도맡았다"며 "정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면서 2인자였던 남 부사장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라 여겨 상당한 원망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청와대 업은 '수퍼갑(甲)'

남상태 사장은 알려진 대로 대주주 산은보다 청와대 인맥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2006년 3월에 사장에 올랐고 경영실적을 낸 후에 2009년 3월 3년 연임에 성공했다. 남 사장 연임에는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남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윤옥 여사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다. 그는 김 여사의 고향 후배로 여사의 친동생인 고 김재정 씨와 막역했던 친구다.

남상태 사장의 이런 배경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비리혐의가 제기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언급했다. 강 전 은행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슈퍼 갑(甲)이 청와대를 업고 있는 남상태였다"며 "(남 사장은) 3연임을 하려다 내가 반대해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남 사장은 2011년 말 대우조선을 지주사 체제로 변경해 자신이 지주사 부회장을 맡는 3연임을 계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패하자 그는 산은 출신이 아닌 대우조선 내부 부사장들의 사장 경합을 요구하고 이 주장은 관철됐다.

대우조선 다른 관계자는 "2012년 사장 경합은 결국 남상태 사장의 심복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고재호 부사장(사업총괄), 고영렬 부사장(기획)의 2파전으로 치러졌다"며 "고재호 씨가 사장이 되면서 남 사장이 연임 시절부터 시작됐던 회계 문제가 다시 3년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권불십년' 돌아온 올드보이의 플리바겐

대우조선의 경영자 및 관리 리스크는 앞서 살핀 것처럼 해묵은 것이었다. 이 상처가 산은이 관리를 시작한 외환위기 이후로 십 수년간 곪을 대로 곪아가고 있던 터였다. 산은은 이런 대우조선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신임 사장을 외부에서 수혈했는데 이 주인공이 9년 전 회사를 떠났던 정성립 사장이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
정 사장은 2006년 대우조선을 그만뒀지만 CEO(최고의사결정권자) 커리어를 지속했다. 2006년 옛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정보시스템 대표이사 회장을 6년간 역임했고 2013년엔 산은이 지배력을 가진 STX조선해양 대표이사로 조선업에 돌아왔다. 이런 관계로 정 사장은 산은이 믿고 쓰는 산피아(산은+마피아)로 불렸다.

2015년 5월 대우조선에 돌아온 정 사장은 임명권자의 주문에 답하고 10년에 가까운 자신의 부재 기간을 토로할만한 비리를 밝혀냈다. 지난해 7월 터져 나온 2조원대의 회계부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획한 이른바 '빅 배스(새 CEO가 전임기간 누적 손실과 잠재적 부실을 회계에서 터는 것)'는 대주주도 감당치 못할 사태를 낳았다. 부실의 규모가 예상했던 2조원 보다 몇 배나 컸던 것이다.

파벌대립이 가져온 폭로전…사정당국 개입

내부고발자가 알린 대우조선의 회계비리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져 현재 5조원대 이상으로 지적된다. 규모가 제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서 주가는 폭락했고 상장사인 회사의 주식거래는 폐지될 위기에 몰렸다. 신규 조선 수주로 운용자금을 충당해야 하지만 해외 발주사들은 이미 주문한 물량마저 클레임을 걸어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정 사장이 전임들의 비리를 밝힌 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 형태가 언론을 통한 폭로로 이뤄졌고 문제 규모도 조선업 관례상 용인되던 수준을 넘어 대부분의 실무자를 비리자로 몰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 사장이 돌아온 후 그동안 회사에 남았던 임직원들을 대부분 범죄자처럼 취급됐고 그는 외부에서 데려온 우호세력을 곳곳에 앉히기 시작해 (정사장에게 임직원들이) 우호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지난 6월 주총을 열어 대우정보시스템과 STX조선 대표 시절에 손발을 맞췄던 조욱성 씨를 관리담당 부사장(등기이사)으로 임명했다. 동시에 측근인 김유식 전 STX팬오션 부회장과 조대환 법무법인 대오 고문 변호사 등은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회사를 떠났던지 10년 만에 친정체제를 다시 구축한 셈이다.

이런 파벌 싸움은 폭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리가 커지고 남상태, 고재호 사장이 영어의 몸이 됐지만 이들과 함께 연루된 이들의 투서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정성립 사장과 김열중 재무 부사장에 대한 추가 분식 혐의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참고인과 반대파 피의자들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대우조선 임직원들 중에는 정 사장이나 산은 출신의 김열중 부사장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회사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며 "검찰도 이번 문제가 폭로전으로 치닫게 되자 비리를 먼저 제보한 정 사장 등에도 과오가 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 사태 악화를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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