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화해'와 '치유'의 길

머니투데이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2016.08.12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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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지구 반대편에서 세계 축제인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여자배구팀의 한일전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일상에서 잊고 지내다가도, 한일 간 경기가 있을 때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정이 복받치기도 한다. 그것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여러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2005년 말, 필자는 위안부피해자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국장으로 있었다. 당시 한 해에만 피해자 할머니 열여덟 분이 돌아가시는 상황을 겪었다. 그분들이 마음의 고통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했다.



1993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를 국가가 직접 보호, 지원하기 위해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 제정 이후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4년부터는 피해자별로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피해자 할머니를 수시로 방문, 생활불편이나 위험요인 등을 꼼꼼히 챙기고 있으며, 주택 개·보수, 틀니, 도배·장판, 휠체어 지원 등 피해자 할머니 한분 한분을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중국에서 갑자기 다치신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와서 4개월여 동안 병원 치료와 정서, 심리적 안정을 도와드렸다. 현재는 다소 안심할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 조각의 위안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 할머니들이 워낙 연세가 많고 최근 10년 동안 매년 열 분 가까이 영면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제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시는 동안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 정부 간 합의는 이런 시급성이 고려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적 사죄 표명, 일본 정부 예산의 출연금이 포함된 이번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어서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그분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겠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7개월의 준비 끝에 지난달 28일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재단 출범 전, 재단 준비위원회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본 결과 상당수 할머니들이 재단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하셨다. 이제 재단이 적극적인 활동으로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할머니들을 위한 생활안정과 치료, 맞춤형 지원을 계속 확대해나갈 것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의 여성인권 문제인 만큼 미래세대가 교훈으로 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운영과 역사교육도 계속해 갈 것이다.

다만, 재단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려면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피해자들을 위한다는 마음만큼은 정부와 국민, 화해·치유재단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단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이제는 위안부 피해자를 보듬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것이 '화해'와 '치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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