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엔 편안하고 아름답기만 한 제주. 속을 보면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곳이 많은 제주도다./사진=김창현 기자
그게 서글프다는 이가 있다. 그러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김형훈 지음, 나무발전소 펴냄)라고 외쳤다.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라고 했듯, 그렇게 외친 제주 사람도 뭍으로 나갔다. 하지만 학업을 마치고 어른이 된 그는 '물을 건너' 다시 돌아 갔다. 자신이 난 그곳, 제주에서 어른의 일생을 시작했다.
제주도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돌담. 현대식 돌들과 다르게 면이 다른 돌을 맞춰가며 쌓았다. 약해 보일 수 있으나 강한 태풍이 와도 끄떡 없다./사진=김창현 기자
제주의 삼다 중 하나인 돌. 제주 돌의 이야기는 죽음에서 시작한다. 제주 사람은 죽어서도 돌에 갇혔다. 제주를 다니다 보면 오름 주변에, 밭 한가운데 덩그렁 놓여 있는 것들이 눈에 자주 띈다. 무덤이다. 그리고 그 무덤은 돌로 담이 쌓여있다. 그들은 무덤을 만들면서 ‘산을 쓴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무덤을 두른 돌담은 ‘산담’이다.
산담을 살피면 이야기가 있다. 남자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출입문을 두었다. 출입문 위에는 판석을 서까래처럼 얹어 마치 죽은 자가 자신의 집인 무덤을 드나들도록 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과 떨어지지 않은, 삶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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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쌓은 돌담은 '밭담'이라고 부른다. '밭담'은 검은 용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흑룡만리'라 불린다./사진=김창현 기자
돌과 돌 사이에 인위적으로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큰 구멍이 있기도 하다. 구멍 사이로 바다나 올레길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환해장성으로 가는 길목 돌담. 고려시대 삼별초의 군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둘러 만들어졌다.
저자는 “돌을 멋있게 쌓는 게 아닌, ‘붙인다’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여장이라 불리는 성가퀴(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관측하고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도 만들었다. 환해장성은 초기 300리를 휘감던 건축물이나 지금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1998년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지만 많이 파괴돼 복원 중이다.
직접 돌담 쌓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아부오름'. 산 모양이 움푹 파여 있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도에는 이런 오름이 368개가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오름’은 휴화산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 전역에 분포된 분화구를 가진 소형 산으로 생각하면 된다. 산도 바다도 아닌 정말 제주만의 것을 꼽으라면 저자는 이 오름을 꼽는다.
제주에는 하루에 한 개씩 365일을 매일 오르고 3일 더 올라야 하는 368개 오름이 있다. 저자는 제주의 맛을 진정 느끼려면 한라산이 아닌 오름을 오를 것을 권한다. "한라산은 정복할 수 있어도 오름은 정복만으로는 안 되는 곳이다."
그중 제주시 구좌읍은 별나다. 구좌읍 일대의 오름을 오르면 제주를 ‘오름의 왕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용눈이오름’은 오름의 왕국 시작점이다. 푸른 잔디를 입은 용의 등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 “오름은 정복하는데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면서, 자기화 내지 오름과의 동질화에 맛이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지르밟아 가다 보면 오름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든다.” 저자의 오름 예찬론이다.
'아부오름' 정상에서 눈을 돌리면 많은 오름들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소와 말이 자유롭게 목초를 먹는 모습, 그리고 삼나무 숲의 풍경이 장관이다. 영화 ‘이재수의 난’을 촬영하며 심은 나무들이지만 제주의 자연이 됐다. 오름 정상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여름 야생화를 구경하는 오름의 매력을 느꼈다.
제주 4.3 사건으로 사라진 마을 중 집터와 돌담이 남아있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고요한 바다 앞에서 어떤 일 있었는지 흔적만이 얘기해 준다./사진=김창현 기자
제주 화북 곤을동 올레길을 걷다 보면 한 번은 들어본 안내판이 보인다. “제주 4.3 사건을 아시나요?”
제주 4.3 사건을 말할 때 화북 곤을동 마을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4.3 사건으로 많은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엔 돌담과 집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현지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올레길을 따라 바라보는 해안 풍경은 그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곳인데 곤을동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제주 4.3 사건이 있기 전 곤을동 마을로 들어가던 입구다. 현재는 잡초와 돌담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제주가 육지 사람들이 보기엔 땅값도 많이 오르고 발전을 많이 한 것 같아서 다들 잘 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제주도민들은 갑자기 오른 땅값과 변해버린 모습에 더 힘들어하죠. 갑자기 오른 땅값으로 혜택을 본 제주도민은 실제로 아주 적고 외지인들이 제주로 와서 돈을 벌고 있어요. 제주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으면 힘들어졌지 삶이 윤택해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제주 사람 김형훈은 제주를 지키고 싶다.
"제주 원래 모습이 제주인데 자꾸 변해가는 모습을 제주도로 인식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제주 본연의 모습을 알리고 지키고 싶어요."
그간 내가 보고 온 제주는 얼마큼 진짜 제주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