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전 오늘…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합니다"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2016.07.23 05:56
글자크기

[역사 속 오늘]'어린이'를 사람으로 대한 소파 방정환 선생

소파 방정환 선생./자료=위키미디아소파 방정환 선생./자료=위키미디아


85년 전 오늘…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합니다"
어린이 : 어린 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던 시절.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보다도 '애녀석' '아해놈' '어린놈'과 같은 천대어로 불리는게 익숙하던 때가 있었다. 사람이라기 보다 부모 소유의 물건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런 아이들에게 '어린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여줬다. 민족의 장래이자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이 그였다.



방정환이 이 같은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크다. 상인이었던 그의 부친은 사업 실패에 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천도교(동학)인이 됐고 방정환 역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됐다. 그의 장인은 천도교의 3대 교주인 손병희다.

방정환은 인간 평등 사상을 강조하는 천도교의 교리에 따라 어린아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결혼 후에는 이 같은 가치관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세계 최초 어린이 인권 선언이다. 국제사회가 어린이 인권에 대한 관심을 보인 때가 1924년 '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 인데 방정환은 그보다 앞선 1923년에 어린이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1922년 5월1일. 방정환은 이 날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1923년 어린이날에 여러 가지 기념 행사를 했다. 어린이날의 취지와 함께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어른들에게 쓰는 글, 어린이에게 쓰는 글 등 어린이날 선전문도 배포했다.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해 주십시오.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해 주십시오.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해 주십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해 주십시오. 나쁜 구경은 시키지 마시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 주십시오. 장가나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해 주십시오.(선전문 내용 중)


이후 어린이날은 일본의 탄압과 방해로 5월 첫번째 일요일에 열리기도 했고 아예 행사를 치르지 못한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그 명맥은 계속 유지돼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면서 오늘날 5일5일 열리게 됐다.

어린이를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최초 아동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해 동화 문학 장르를 개척했고, 소년운동 협회, 색동회, 소년 지도자대회 등 소년 단체를 통한 교육운동을 했다. 어린이는 예술 속에서 균형있게 성장해야한다는 생각에서 한국 최초로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 등 예술 문화 운동도 전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활동도 오래가지 못했다.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소년 운동 진영의 분열까지 겹치면서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합니다." 1931년 7월 23일. 33세의 방정환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가 떠난 지 85년이 지난 2016년.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OECD 최하위
어린이·청소년 자살 충동 5명 중 1명 경험


지난해 한국방정환재단이 전국 어린이·청소년 7908명을 대상으로 한 행복 지수 조사에서 '주관적 행복'에 대한 질문에 OECD국가 중 최하위(평균 85.2%중 73%)를 기록했다. 응답한 어린이·청소년들은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며 외롭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물질·보건·교육 수준 등 객관적 지표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위권이었다.

1922~23년 어린이날 선언문 중./자료=한국방정환재단<br>
1922~23년 어린이날 선언문 중./자료=한국방정환재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