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나요? '언어'에 대한 유쾌한 성찰

머니투데이 이인선 동네북서평단 주부 2016.07.30 03:21
글자크기

[동네북] <2>'터키어 수강일지'…어느 소녀의 비밀이야기

편집자주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나요? '언어'에 대한 유쾌한 성찰


누구에게나 자기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자기만이 보고 깨달은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이름, 학년, 성적으로만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15세 소녀가 있었다.

당신은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나요? '언어'에 대한 유쾌한 성찰
그는 "황당한 어느 한순간"에 "절대 들킬 염려가 없는 비밀이 생겨났"는데, 그 첫 비밀은 바로 낚시가게 아저씨 엉덩이였다. 동년배 남중생보다 아저씨들에게 매료되는 까닭은 그들이 가진 "보이지 않는 배려, 눈에 띄지 않는 열정"때문이다.



"남을 이해하는 것과 남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것, 둘 중 어떤 게 더 쉬울까? 보이는 세계와 내가 아는 세계는 어떻게 다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화자는 '존나카와이' 그룹에 가입하기, 터키어 수강 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표현들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 소설은 시간별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의식이 흐르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얼핏 랩 가사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표현'을 찾아가기 위해 애쓰는 작가의 표현 자체가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주민들 중 하나가 정신 차리고 112에 신고할 때까지 십이 초간의 공백이 있었다."

"…스탠드는 멀쩡해 보이던데 가져가도 되냐는 둥, 미쳤냐는 둥, 아니라고 파쳤다는 둥, 아 지금 장난할 때냐는 둥, 아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니라는 둥, 어서 결론을 내자는 둥, 별 말이 다 오고 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는 화자와는 한 세대 이상 차이 나는 인물이다. 존나카와이 그룹에서 '은따'(드러내지 않고 따돌리는 것)를 당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화자는 온라인에서 만난 그를 터키문화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표현' 에 관해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온라인에서 황당하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그들은 40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닮은 데가 많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 보자.

"그러면 말이 없어도 되지 않나요?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때문에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을 주고받는 것과 의식하면서 말을 주고 받는 것은 다르거든. 다른 사람들은 표현을 사용하며 말을 주고 받지만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지는 않아. 표현이 곧 말이라고 믿거든. 그러면 말은 없어도 돼. 그저 표현을 주고받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는 건 말하지 않은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알아듣는 거야. 표현 이상을 사용하는 거야."


터키어 강의를 듣는 동안 화자인 소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내가 내 이야기를 해내고 싶은 상대를 찾아낸다면 나는 가슴에서 이끌어 올린 표현을 사용할 것이라고. 한 마디 한 마디 온몸으로 반응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길어올릴 것이라고."

'우마루내'란 이름을 쓴 작가의 '터키어 수강일지'를 접했을 때 터키문화원과 관련이 있는 한국어 능통자가 쓴 소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마루내는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지금은 아마 졸업 )인 한국인 신예작가이다. 그의 첫 작품을 읽을 기회를 가지게 돼 기쁘다. 읽어내려가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작가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었다.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와 같은 세대라서 더 그랬다. 모처럼 만난 시원한 소설, 여름날 무더위를 날려 버릴 신선함이 있다.

◇ 터키어 수강일지=우마루내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 288쪽/1만3000원.

당신은 의식하며 말을 주고받나요? '언어'에 대한 유쾌한 성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