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상법 개정은 세대간 이해조정이다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2016.07.14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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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상법 개정은 세대간 이해조정이다


미국에는 회사법이 50개가 있다. 이중 단연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판례다. 델라웨어는 바이든 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지역구다. 가장 선진적인 회사법과 명망 있는 전문 판사들이 있어 나머지 49개 주의 회사법이 항상 델라웨어를 의식해서 발달한다. 델라웨어 회사법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67년이므로 이제 50년이 되었다. 50주년을 계기로 미국 학계에서는 회사법의 미래와 발전방향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된다.

미국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델라웨어에 적을 두고 있어 그 법에 따라 운영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1967년 그 회사법이 경영진의 권한을 강력히 보장하는 내용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기는 하지만 미국 회사의 사실상 주역은 경영진과 이사회다. 이렇게 해야 주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 갈수록 주인이 아닌 경영진이 진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를 부실하게 하거나 회사 돈을 빼돌리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에 지난 50년 동안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주주의 권리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진화해왔다. 그러나 최근 50주년 계기 토의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동안 회사법은 소수주주 보호에 역점을 두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미국 회사의 소유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즉, 기관투자가들의 비중이 압도적이 된 것이다. 기관주주들은 힘없고 경영진에게 당하기만 하는 주주의 모습이 아니다. 특히 헤지펀드들이 활동적이 되면서 이제 경영자들은 헤지펀드를 포함한 기관들의 눈치를 봐야 하게 되었다. 회사법 진화의 기초가 된 전제 자체가 그 사이에 변화한 것이다.



문제는 기관과 헤지펀드는 그 속성상 중단기 실적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자기들 자체의 상전인 주주와 고객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중단기 실적에 초점을 맞춘 기관들의 활동주의는 실제로 주가상승과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즉 주주들의 권리신장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중단기 실적주의는 주주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만 회사의 혁신에는 장애가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온다. 즉 세대간 이해조정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국회에서 다시 시작된 상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재계에서는 주로 그 남용 가능성을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초점이 빗나갔다. 어떤 제도든 남용하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그 정도는 부담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제도가 개혁될 수 있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주주와 회사 이익을 위해 주주들에게 몇 가지 더 강한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현대 회사법의 발전방향에 비추어 볼 때 과연 현명한가다.
 
국내에서도 기관의 비중은 나날이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관들이 경영진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몇몇 기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스튜어드십코드도 준비되고 있다. 아직 큰 회사 경영진은 겉보기와 달리 소수주주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기관과 헤지펀드는 문제가 다르다. 그네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혁신에서 멀어진다면 곤란하다.

대우조선해양과 롯데에서 벌어진 일은 학술적으로 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지나치게 궤도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사건들이다.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제도는 능력과 윤리에서 평균적인 사람들이 경영하는 평균적인 회사를 생각하고 역사와 큰 흐름을 반영해서 정비되어야 한다. 이 점이 상법 개정 논의에서 고려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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